[97동아신춘문예/평론 당선작]최인훈의「화두」…김인호

  • 입력 1997년 1월 3일 20시 38분


진정한 소설은 새로운 형식을 추구한다. 그것은 소설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화두」 또한 그렇다. 자료 상태로 내던져져 있는 것 같은 「화두」에는 무질서한 것만이 아닌 「주체의 위기」를 중심 문제로 삼아 소설의 활로를 뚫어 보려는 안간힘이 담겨 있다. 그것은 「근대」논의에도 시사점을 제공하고 「저자의 죽음」이 거론되는 현 시점에 「새로운 글쓰기」를 일깨워 준다. 최인훈이 「화두」 이전의 작품에서 보여주던 「주체」 문제가 「화두」에서는 그 사유가 변모하게 된다. 어머니의 사라짐을 인식한 순간부터 발생한 서술자 「나」의 주체는 자신의 최초의 글을 인정해준 「국어교사」와 자신을 최초로 암담하게 만들었던 「지도원선생」을 통해 완성되어 이후 서술자의 전 생애를 지배하고 끊임없이 글쓰기에 작용하고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주체는 「화두」 이전의 작품에 나타나던 주체와 통한다. 그러나 「화두」에서는 그러한 주체의 폐해를 다룬다. 물론 거기에는 개별주체를 완성하려는 노력이 있고 자신의 기표를 붙잡으려는 안간힘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두」의 주체는 자신에 대해 말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려는 기획이 좌절을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화두」의 주체는 강한 주체인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불안하면서도 흔들리는 주체이다. 주체는 「절대정신」이라는 너울을 쓴 「국가」나 「이념」에 예속되어 있을 때 필연적으로 억압당한다. 「화두」의 주체도 동서 양대 이념의 틀 속에 예속되어 살아가고 있다. 이때 개별주체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 속에 갇혀 언제나 한쪽 이념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서술자가 마르크스를 잘 모르는 사회주의자라고 할지라도 그는 「조명희」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 주체는 억압당할 때 「글쓰기」조차 잃어버린다. 그는 정신적으로 유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때 소련이 붕괴된다. 그는 자신이 믿었던 이념에 회의를 하게 되고 또한 조명희의 보고서를 통해 예술가의 자유로운 정신과는 상반된 영역에 놓여 있는 거대주체를 발견하게 된다. 비로소 그는 예술가 본연의 정신을 되찾아 그동안 「신」 「절대정신」 「이성」의 음모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하여 서술자는 마침내 15년만에 소설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화두」의 형식은 주체의 해체로부터 비롯된다. 때로는 따분한 일상이 묘사되며 아포리즘 형식의 단상이나 비평, 저널 시나리오 형태의 글쓰기가 나타난다. 이것들은 완전한 해석에 이르는 어떠한 통로도 제시하지 않으며 단지 사회적인 관행들이 억압적인 이념을 통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광기」와 「타자」가 복원된다. 한편에서는 소설을 지향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소설을 해체하고자 안간힘을 쓰게 된다. 독자에게 그것이 혼란스러워 보여도 그는 문맥의 틈새에서 유희할 수 있다.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텍스트의 완성을 이루어낼 수 있다. 주체가 해체됨으로써 「나」와는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그것은 타자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주체의 암흑을 걷어내게 되는 것이다. 「화두」의 텍스트성은 독자와 함께 세계와 하나로 어우러지고 열린 구조를 향해 흘러간다. 「화두」를 덮고 보면 빛이 보인다. 그것은 사적 경험 기억 담론 등을 통해 사적 역사를 말하고 있지만 책을 덮고 보면 20세기 한반도의 시대 현실이 보인다. 사적인 장을 넘어 공적인 장으로 넘어간 「화두」, 그것이 최인훈 「화두」의 위대성이다. 김 인 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