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삼가지만 토하고 삼킬 줄 알며, 때에 따르니 청탁을 가리지 않네. 속이 비어 있어 족히 물건을 포용하니, 흰 바탕은 하늘이 만들었음을 보여주네(守口能呑吐 隨時任濁淸 中虛足容物 質白見天成). ―이정구 ‘술에 취하여 병에 쓰다(醉書甁面)’ 이화여대 박물관은 한국 도자기 컬렉…
‘아무리 아픈 말이라도 말하겠다는 입. 아무리 아픈 말이라도 듣겠다는 귀. 어른의 우정을 위해서 꼭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체기관인 것 같아요.’ ―요조·임경선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곁에 두고 시시때때로 반복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좋은 소설은…
“이 침묵의 우주 공간 속을 기어가는 ‘인류’라는 이름의 이 공룡의, ‘역사’라는 이름의 이 운동방식이 나를 전율시킨다.”―최인훈 ‘화두’ 특정 시기와 장소를 공유하는 인간들은 부산하게 부닥친다. 여러 개성 간의 마찰은 그 조우(遭遇)를 종종 격렬하게 만든다. 다툼 후 찾아오는 조…
“돈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가장 유익한 것은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대가로 현명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쇼펜하우어 ‘희망에 대하여’ 이 글을 고등학생 시절 우연한 기회에 읽었을 때 궤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염세주의 철학자의 냉소적 어구가 …
“사랑은 함께 빵을 나눠 먹고 홀로 부스러기를 줍는 일.” ―기영석 ‘사라지는 게 아름다움이라면 너는 아름다움이 된 걸까’ 사랑의 의미를 찾기 위해 꽤나 오래 앓았다. 사랑이란 단어 앞에 언제나 힘없는 표정으로 한 발자국 물러서야 했던 내게 사랑은 가장 위태로운 앎과 감이었다. …
“머리 쓰고 땀 흘리자.” ―함태호 오뚜기 전 명예회장 올해 가을로 함태호 오뚜기 전 명예회장이 작고한 지 3년이 됐다. 그를 기억하는 주변인들의 글이 모여 ‘나무, 숲이 되다’라는 평전이 발간됐다. 보통 평전은 한 저자에 의해 전 생애가 기록되는데, 특별하게도 가족, 친구, 회사…
“눈 덮인 들판을 지나갈 때라도 길이 없다고 함부로 걷지 마라. 지금 나의 걸어가는 발자취가 후일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서산대사 내게는 구순을 바라보는 원로 소아과 의사이자 선배 여의사인 친정어머니가 있다. 사별한 후 오랜 세월을 혼자 지내기가 얼마나 적적할까 하는 죄스러움 …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 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는 노력이다.”―알랭 드 보통, ‘불안’ 그는 쥐꼬리만큼 버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소꼬리’ 정도는 버는 사람이 되었지만 늘 불안하다. 그는 절대 가난했던 시절로 …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순 있지만 패배하지 않아.”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돌이켜보면 후회투성이다. 그땐 왜 그랬을까?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리도 안달복달했을까? 후회는 때때로 걷잡을 수 없이 난폭해져 기어코 마음 깊이 감춰두었던…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헬렌 걸리 브라운 전 코즈모폴리턴 편집장 시간만 나면 노마드(nomad·떠돌이)를 자청하며 쏘다닌다. 특히 ‘골목투어’는 마음 내키면 언제든지 가능한 나들이다. 배회하며 눈여겨보는 것은 여기저기 걸려 있는 갖가지 …
“서로에 대한 앎은 인간의 본분.” ―정수일 ‘이슬람 문명’ 책 맨 앞에 나오는 문장이다. 처음부터 이 문장은 매우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소중한 진리를 가장 생생히 겪은 것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였다. 2006년 ‘세비야 월드뮤직 엑스포’에 참가한 다음, 바르셀로나…
“그럼 당신은 나와 함께 관찰해줄 겁니까?” ―헨리 제임스, ‘정글의 짐승’ 내가 메고 다니는 백팩에는 한 장의 일기가 들어 있다. 이 일기는 가방의 가장 안쪽, 가방을 멘 사람의 등이 맞닿는 깊숙한 곳에 있다. 등에 메고 다니는 이 일기는 ‘나는 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
“나는 나비를 보았어. 삶에는 보다 나은 것이 있을 거야.”―트리나 폴러스 ‘꽃들에게 희망을’ 몇 해 전 비극적인 아동학대로 숨진 한 아이의 진상조사위원회에 참여했다. 조사 과정에서 아이가 쓴 독서일기를 보다가 익숙한 책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꽃들에게 희망을’이었다. 아이는 이…
“정말이지 인문학은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하는 것이다.” ―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빤히 안다 싶으니까 한번 찾아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인문 갈래, 자연 갈래?” 할 때 진로를 정하면서도 너무 당연하다 …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순 없지만, 그 배경이 장애가 될 수는 없다.”―영화 ‘라따뚜이’에서 음식 평론가 앙통 에고의 대사 라따뚜이는 2007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프랑스 파리의 레스토랑 주방에 상상할 수 없는 쥐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다. 항상 주눅 들어 있던 말단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