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종 기자의 범퍼카]스토커도 울고갈 그들, A급 스타만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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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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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일 밤 12시. 여배우 J가 사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고급빌라 반경 80m. 4개의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시선1=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J. 미니스커트를 입었군. 평소처럼 와인 두 잔을 마시며 TV를 보다가 속옷 차림으로 잠들겠지. 어떻게 속속들이 아느냐고? 479일째 지켜봤으니까.

그래, 나 스토커다. 가끔 란제리도 훔치는 변태 스토커. 그런데 요즘 신경 거슬리는 일이 생겼다. J의 집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놈이 나 말고 또 생겼다.

그놈은 자동차를 타고 오후 11시 넘어 나타나 J의 집 입구에서 60m 떨어진 곳에 주차한다. 놀랐다. 형사인 줄 알고. 그런데 카메라를 꺼내 드는 것이다. 경찰은 아닌 거지. 야한 사진이라도 찍으려는 변태일 거야. 1명이 대기하면 동료가 김밥, 치킨을 사 가지고 차 안으로 들어간다. 조용히 수다만 떨다 플래시 소리도 안 내고 카메라 줌을 당긴다.

음, 구역을 나눠야지. 다가가 자동차 창문을 두드렸다. “당신들 누구야. 동업자 의식도 없어? 남의 구역에서!”

#시선2
=똑똑. 야근 중인데 웬 40대 아저씨가 다가왔다. 긴장됐다.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강남의 고급 주택가 주민들은 모르는 차가 오래 서 있으면 바로 신고한다. 다급히 속삭였다. “쉿! 취재 중이에요. 저희 디스패치예요.”

예전 같으면 사람들이 “패치? 게임 패치 까냐?”고 반문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 아저씨도 알아들었나 보다. 하긴 누리꾼들 사이에서 ‘의혹은 디스패치가 확인해줄 거다’라는 말이 유행이니.

디스패치는 연예 전문 인터넷 매체다. 스포츠서울닷컴 연예부 출신 기자들이 2011년 3월 창간했다. 사진기자 4명, 취재기자 6명. 인원은 적지만 기성용-한혜진, 비-김태희 열애 같은 굵직한 특종은 디스패치가 다 했다.

쉽진 않았다. 열애 소문이 나면 스타의 스케줄을 확인한다. 한 달간 세세한 동선을 취재하고 연인들이 만날 것이 유력한 시기(생일 같은)와 장소를 예측해 10시간 이상 잠복취재에 들어간다. 취재 기간은 1∼3개월. 다만 남녀 스타가 한 번 만났다고 해서 바로 보도하진 않는다. 신체 접촉 정도는 확인해야 쓸 수 있다. 취재 도중 스타 커플이 헤어져 특종을 날린 경우도 있다.

취재가 끝나면 스타의 소속사에 연락한다. ‘열애 사진을 가지고 돈을 뜯어낸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다. 열애가 확인됐으니 소속사의 입장을 들어 보기 위한 거다. 다만 소속사가 ‘제발 약한 걸로 해 달라’고 사정하면 호텔에서 나오는 모습 말고 풋풋한 길거리 데이트 같은 ‘예쁜’ 사진만 공개한다.

디스패치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연예인들의 경계도 심해졌다. 잠복해 있으면 낌새를 채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차를 운전해 재빨리 빠져나간다. 이럴 때를 대비해 차 안에선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나름의 취재 윤리도 있다. 열애 보도에 타격을 입지 않을 A급만 노린다. 신인이나 무명 끝에 빛을 본 스타는 취재를 자제한다. 피해가 클 수 있으니까.

그런데도 취재 방식에 비난이 많다. 할리우드 파파라치식 보도의 폐해를 한국에 정착시킨 주범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만큼 데이트 장면 정도가 드러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는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특권은 다 누리면서 조금 불리한 상황이 되면 프라이버시 운운하는 연예인이 못마땅한 거다. 판단은 대중에게 맡긴다. 근데 저 아저씨…. 아직도 서성거린다.

“가라니까! 경찰 부를 거예요!”

※디스패치를 취재해 재구성한 글입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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