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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재 교수의 지도 읽어주는 여자]미지의 남태평양 개척… 대영제국 건설 ‘기초’ 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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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재 교수의 지도 읽어주는 여자]미지의 남태평양 개척… 대영제국 건설 ‘기초’ 닦아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입력 2018-08-06 03:00수정 2018-08-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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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제임스 쿡 선장의 도전
제임스 쿡 선장이 이름을 붙인 뉴칼레도니아. 빼어난 풍광으로 유명해 ‘남태평양의 작은 니스’로 불린다. 동아일보DB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제임스 쿡(1728∼1779)은 1768년 플리머스항에서 영국의 운명을 바꿀 항해를 시작했다. ‘쿡 선장(캡틴 쿡)’으로 추앙받는 그는 영국 북부 요크셔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소년은 조선 산업이 발달한 휫비에서 성장했다. 18세 때부터 석탄운반선의 견습공으로 일하며 항해술을 배우고 지도제작법을 독학했다. 27세 때 해군에 자원해 지형측량술을 익히고 혹독한 훈련을 견디며 고속 승진했다.

영국군은 쿡이 교정한 정확한 해안 지도를 활용해 캐나다 퀘벡을 점령하며 7년간 계속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쿡은 1767년 해군 대위로 승진했다. 해군 지휘관은 상류층이 독점했는데 쿡은 전문가가 부족한 지도학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것. 쿡은 이듬해 금성을 관측할 태평양 탐사단의 선장으로 발탁됐다. 천문학 식물학 동물학 과학자들을 태운 ‘노력호’는 대서양을 건너 남미 최남단 케이프 혼을 지나 태평양으로 향했다. 소시에테제도에 도착한 이들은 타히티섬에서 3개월간 머물며 과학 실험을 완수했다.

뉴질랜드에서는 6개월간 400여 종의 식물을 채집하고 지도화한 후 호주 동부 해안을 따라 북상했다. 돌고래가 많은 넬슨 만에 상륙한 쿡은 보좌관 필립 스티븐스를 기려 이 지역을 ‘포트스티븐스’로, 고향 요크셔의 유리 용광로를 닮은 내륙 화산 지역은 ‘글라스하우스마운틴’이라 명명했다. 17세기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먼저 다녀가 ‘뉴홀랜드’로 불리던 호주에 영국식 지명을 붙이고 최신 지도를 제작한 건 훗날 대영제국 건설의 기초가 됐다.

1772년 출범한 2차 탐험선의 임무는 미지의 남방대륙을 발견해 지도화하는 것이었다. ‘결심호’와 ‘모험호’에 최신 과학 장비와 각 분야 전문가 200명을 태웠다. 1772년 남위 60도에 이르렀지만 거대한 유빙 때문에 뉴질랜드로 후퇴했다. 남극 탐사에 재도전한 쿡은 1774년 지금의 아문센해 부근인 남위 71도 10분까지 도달했다. 화가 윌리엄 호지스가 그린 거대한 빙산은 풍경화의 새 지평을 열었고 극지방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함대는 거석 ‘모아이’가 신비로운 이스터섬, 통가섬, 타히티섬 등 폴리네시아 일대를 탐험하고 1775년 귀환했다. 단 한 명의 괴혈병 사망자도 내지 않고 3년간 7만 마일을 항해한 것은 기적이었다. 쿡은 1776년 왕립지리학회 정회원이 됐고 최고 영예인 코플리 메달까지 받았다. 1776년 3차 탐험을 떠난 쿡은 알래스카를 거쳐 하와이에 상륙했지만 원주민의 기습 공격으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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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의 탐험으로 태평양 섬들의 정확한 위치가 표시된 세계지도가 거의 다 완성됐다. 그의 도전정신은 모험을 장려하는 영국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최근 동굴에 갇힌 태국 소년들의 위치를 처음 확인한 건 영국에서 급파된 동굴탐사 전문가들이었다. 소년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구조작업에 크게 기여한 마취과 의사 리처드 해리스는 호주 브리즈번의 제임스쿡대를 졸업한 베테랑 잠수부였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제임스 쿡#쿡 선장#뉴칼레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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