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훈의 클래식 패션 산책]<4>배려하는 마음이 깃든 맞춤복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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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성격이나 취향이 천차만별임에도 생활에 필요한 제품이나 대중이 열광하는 물건들은 점점 더 규격화, 표준화되고 있다. 스마트폰이든 슈트든 수천만 명의 소비자가 좋아하는 제품은 단 몇 개로 압축되지 않던가. 압도적인 투자를 통해 형성된 브랜드의 힘이기도 하겠지만 소품종 대량생산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교한 비즈니스 법칙이기도 하다. 취향이 다른 모두가 표준화된 기성복을 입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물론 기성복은 많은 사람의 신체 치수를 정교하게 분석한 뒤 그 최대공약수로 도출된 사이즈를 생산하기에 선택도 쉽고 입기도 편리하다.

하지만 모든 학문이나 예술에 그 본류가 있는 것처럼 애초에 남자의 복장은 한 사람의 소중한 순간을 위해 가장 높은 품질로 준비하는 맞춤복의 철학과 정신으로부터 출발했다. 신사들의 복장이 확립된 근대에는 장인들이 정성을 다해 한 벌씩 수작업으로 슈트를 제작했다. 이렇게 몸에 잘 맞고 품질도 뛰어난 맞춤복은 옷이 아니라 마치 제2의 피부처럼 착용자와 일체화되며 수십 년이 지나도 변형이 적어서 후세에 물려주기도 좋다.

결과적으로 맞춤복은 사람을 먼저 생각해 그에 가장 어울리는 최고의 옷을 만들어내고, 기성복은 평균의 옷을 먼저 생각한 뒤 그것을 많은 사람에게 적응시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것은 아니다. 다만 기성복이 필요에 의한 ‘제품’에 가깝다면 맞춤복은 개인적인 옷을 넘어 사회와 타인과 자신을 배려하는 남자들의 ‘마음가짐’과 같다. 살다 보면 내일 바로 입을 옷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우리에겐 인생의 멋진 순간에 입을 한 벌의 옷을 위해서 몇 달을 인내하는 아름다운 여유도 있다. 이처럼 맞춤복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 옷과 자신의 결합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갖도록 도와주며, 유행이나 브랜드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힘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남자가 자신만의 특별한 맞춤복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용카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관심이며 새로운 탐험을 시작할 용기다. 맞춤 슈트나 재킷이 부담스럽다면 그보다 조금 가벼운 맞춤 셔츠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저 셔츠 하나라고 사소하게 생각하지 말고 목, 가슴, 손목 등 자신의 상세한 사이즈를 파악해 본다면 맞춤의 본질에 접근하는 멋진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남훈 제일모직 란스미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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