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러브 스쿨]"그래도 머슴애"

  • 입력 2001년 7월 12일 18시 33분


여학교에서도 일해 봤고, 남학교에서도 근무해 봤다. 달리 표현하자면 ‘천당’에도, ‘지옥’에도 있어봤다.그런데 남학생 이놈들 정말 공부 안 한다. 먹고, 자고, 떠드는 것말고는 하는 게 없는 놈들이다. 그러고도 대학 들어가는 걸 보면 놈들 진짜 시력(?) 하나는 끝내준다.

남학생 이놈들 진짜 재미없다. 썰렁 그 자체다. 내 깐에는 열과 성을 다해 우스운 얘기, 야한 얘기를 시리즈로 해주면 ‘피식’ 웃어주기라도 해야 예의 아닌가. 딴 짓 하다 “왜? 왜? 왜 그래?” 하며 짝꿍 옆구리를 들쑤시질 않나, 고작 “선생님, 잘 안 들려요”니 도대체가 매사에 관심이란 것이 없는 놈들이다.

여학생들은 ‘무슨 데이, 무슨 데이’하며 1년 내내 경사요, 건수 있는 날들인데 이건 버얼건 공휴일만 바라고 사는 놈들이라 영 멋대가리가 없다. 여학생들이 사탕이다, 초콜릿이다 보따리로 갖다주는 데 반해 이놈들은 오히려 음료수 사달라, 안 사주면 공부 안 하겠다, 엄포(?)까지 놓는다.

생일이 되면 여학생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풍선에 폭죽에 “노래! 노래!” 하며 옆 반까지 들뜨게 만든다. 그런데 글쎄 이놈들은 10년이 다 가도록 담임 생일이 언제인지 물어보기는커녕 알려줘도 ‘모르쇠’다. 오히려 ‘생일빵’이라며 주먹들고 달려드는 놈도 있다(그러고 보니 이놈들 증말 나쁜 놈들이네?).

‘우르릉 콰앙!’ 사방이 어두워지며 번개라도 칠 것 같으면 차이가 확 난다. 여학생들은 커튼을 치네, 불을 끄네 난리를 피우며 음흉한 목소리로 “선생니임, 구신 이야그 해 주세요옹∼” 한다. 반면 이놈들은 날만 우중충해지면 철퍼덕 엎어져 잘 궁리만 하니 무슨 놈의 재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여학생들은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주도 있다. 연극, 영화, 전시회 표를 구해 한 장만 살짝 책상 위에 놓고 간다. 갈까 말까, 말까 갈까. ‘가면 분명히 옆 자리에 와 있을 텐데’, ‘대체 고 여학생이 누굴까’, ‘그러다 소문나면 내 인기는?’….

그러지는 못할 망정 40명이 돌아가며 다리가 부러졌다, 팔 부러졌다 정형외과에 가야 하고, 사고친 놈 찾으러 파출소를 순례해야 하니 이건 원 울화통이 터져 어디 살겠는가.

수학여행을 가도 마찬가지다. 여학교에선 붙들려 곤욕(?)을 치르지 않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데, 남학교는 한참 다르다. 어울려 준답시고 기껏 방을 찾아가면 뭔가 후닥닥 감추기 바쁘고, ‘저 양반 왜 빨랑 안 가고 얼쩡거리는 거야’ 하는 눈빛뿐. 그저 문 걸어 잠그고, 두들기고, 피워대는 일밖엔 하는 게 없으니….

그런데 정말 요상하고도 이상한 게 하나 있다. 전철 안에서나, 길에서나, 특히 목욕탕 안에서 “선생니임!” 하고 달려와 인사하는 놈은 언제나 여학생이 아니라 남학생이라는 사실. 그것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성호(41·휘문고 국어교사)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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