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엿보기]콜로라도의 변화(1)

  • 입력 2001년 3월 7일 16시 28분


1993년 창단한 콜로라도는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쿠어스필드의 특성상 그동안 투수력보다는 타력에 의존하는 팀컬러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0년이 되지않는 짧은 역사를 지닌 콜로라도는 그동안 팀을 대표할만한 투수는 단 1명도 배출해내지 못한 반면 타자부분에서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를 여러명 배출할 정도로 전형적인 타격의 팀이었다.

시간을 되돌려 1993년으로 돌아가보자.

플로리다와 함께 새롭게 메이저리그에 참가한 콜로라도는 신생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67승 95패를 기록하며 리그 하위권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역대 신생팀들이 참가 첫 시즌에는 대부분 100패를 넘기며 기존의 팀과 현격한 전력의 차이를 드러낸 것과는 달리 콜로라도는 승률도 4할대를 유지했고 패수도 세자리 수를 넘기지 않는 등 비교적 선전하며 첫시즌을 성공적으로 마감했다.

팀성적도 괜찮았지만 콜로라도가 창단 첫시즌을 통해 거둔 최대의 수확은 공격적인 팀컬러를 유지할 수 있는 타자들을 영입했다는 점이다. 몬트리올에서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안드레스 갈라라가를 비롯 LA 다저스에서 에릭 영, 애틀란타에서 비니 카스티야, 밀워키에서 단테 비셋을 데려오며 향후 메이저리그 최강의 타선을 구축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갈라라가는 콜로라도 이적후 2년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슬럼프에서 탈출하며 완벽하게 재기했고 캘리포니아, 밀워키를 거치며 별다른 성적을 남기지 못했던 비셋은 괄목상대한 발전을 보이며 팀의 중심타자로 성장했다. 또한 다저스와 애틀란타에서 백업요원에 불과했던 영과 카스티야도 팀이적후 완전히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창단 2년째인 1994시즌, 양리그가 3개 지구로 개편된 첫시즌에서 콜로라도는 이들의 활약으로 전년도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비록 5할대에도 못 미치는 승률(53승 64패, 승률 0.453)이었지만 팀순위는 당당히 지구 1위였고 만약 파업으로 시즌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애리조나보다 먼저 팀창단 2년만에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기록을 작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95시즌 들어 콜로라도에는 두가지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첫번째는 콜로라도가 타격의 팀으로 불리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쿠어스필드가 처음으로 개장한 것이고 두번째로는 몬트리올에서 강타자 래리 워커를 영입하면서 명실상부한 메이저리그 최강의 타선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새홈구장 개장과 새로운 슈퍼스타의 가세로 전력상승과 분위기 전환에 성공한 콜로라도는 와일드카드를 획득하며 창단 3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린다.

콜로라도가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막강한 타력.

안드레스 갈라라가 - 0.280, 31홈런, 106타점

단테 비셋 - 0.317, 40홈런, 128타점

래리 워커 - 0.306, 36홈런, 101타점

비니 카스티야 - 0.309, 32홈런, 90타점

리그 홈런, 타점왕을 차지한 단테 비셋을 필두로 갈라라가, 워커, 카스티야 등 무려 4명의 선수가 30홈런 이상을 기록하는 막강한 파워를 선보였고 이들의 존재는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일등공신이었다.

또한 이들의 기록으로 콜로라도는 지난 1977년 스티브 가비(33개), 더스틴 베이커(30개), 론 세이(30개), 래지 스미스(32개)를 앞세운 LA 다저스 이후 한팀에서 4명의 선수가 30홈런 이상을 기록한 두번째 팀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으며 쿠어스필드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했다.

이후에도 콜로라도는 엘리스 벅스, 토드 헬튼 등 리그 정상급 타자들을 꾸준히 배출했고 매년 팀홈런, 팀타율 부분에서 리그 상위권을 독점하며 명실상부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격팀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막강한 장타력에도 불구하고 콜로라도는 1995년 와일드카드를 차지한 이후 매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팀성적에서는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팀타선은 막강한 위력을 뽐내고 있었지만 이와 반대로 해마다 최하위권을 맴도는 허약한 투수력이 콜로라도의 아킬레스 건으로 나타나 번번히 팀성적의 상승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즉 다시 말해 전에도 언급했지만 쿠어스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악명이 높아 콜로라도는 정상적인 투수력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콜로라도는 투수력 보강을 위해 97시즌이 끝난 후 '커브의 귀재'로 불리우는 데릴 카일을 영입해 마운드의 강화를 꽤했지만 카일 역시 쿠어스필드의 희박한 공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1997년 - 19승 7패, 방어율 2.57 (휴스턴)

1998년 - 13승 17패, 방어율 5.20 (콜로라도)

1999년 - 8승 13패, 방어율 6.61 (콜로라도)

97시즌 휴스턴의 에이스로 맹활약하며 특급투수로 명성을 날린 카일이지만 쿠어스필드의 2년은 카일을 특급투수에서 평범한투수로 전락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명장 짐 릴랜드를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하고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인 카일의 가세로 지구 우승에 대한 장미빛 꿈을 꾸었던 콜로라도의 98시즌은 쿠어스필드가 투수들에 있어 얼마나 높은 벽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한체 5할 승률에도 못 미치는 77승을 올리며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2편으로 계속...)

김용한/동아닷컴 객원기자 from00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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