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뷰]21개 지역서 자치확대-독립 요구… 유럽 휩쓰는 ‘분열의 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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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유럽 언론들은 지난달 1일 주민투표가 실시된 이후 한 달 내내 스페인 카탈루냐 독립 사태를 톱기사로 다루고 있다. 이 이슈를 단지 스페인과 자치정부 간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전역에 불고 있는 ‘분열’의 상징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카탈루냐 독립 사태는 지난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나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한 브렉시트로 나타났던 ‘국익 우선주의’에서 더 나아가 ‘지역 우선주의’로 전 세계가 쪼개지고 있는 증거라는 분석이다.

지난달 22일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와 베네토주에서는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롬바르디아주에는 북부 중심 도시 밀라노가 속해 있고, 베네토주에는 관광 도시 베네치아가 포함돼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꼽힌다.

주민 투표는 재정 통제권과 치안, 이민, 교육, 환경 등 핵심 20개 분야에 대해 자치정부가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한지를 물어 95%가 넘는 찬성표가 나왔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이번 협상 이후 각 자치정부는 중앙 정부와 협상에 착수했다.

주민투표를 이끈 정당은 지역 주지사가 몸담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동맹(LN)’이다. 북부동맹은 1991년 이탈리아 북부 및 중부의 14개 주를 ‘파다니아’라는 국가로 독립시키려는 운동을 주도하며 탄생했다. 지금은 독립까지는 아니지만 이탈리아를 연방국가로 전환시켜 북부의 자치권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북부동맹이 추구하는 정책을 들여다보면 이탈리아 자치 확대나 카탈루냐 독립 움직임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부동맹은 극우 포퓰리즘 정당으로 불린다. 지역 정당에 머물렀던 북부동맹은 이민자와 난민 수용에 강하게 반대하며 국민의 지지를 얻어 지금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 3, 4위를 다투는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했다. 이들은 유럽연합(EU)에 부정적이고 유로존 탈퇴를 주장한다. 그동안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쟁과 시리아전쟁에 이탈리아의 참여를 반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크림반도 침공도 러시아 국내 문제로 두고 국제사회가 제재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막기 위해 시작된 세계 통합의 흐름과 정반대의 흐름이다. 2차대전 이후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EU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지역 통합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경제 통합 △유엔이나 유네스코 등 다자기구를 통한 세계 평화 통합으로 갔던 기류와 극우 정당은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이탈리아, 스페인뿐 아니라 EU 소속 11개국이 21개 지역의 자치권 확대와 독립 요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교롭게도 분리를 요구하는 지역이 대부분 부유한 지역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북부동맹이 이탈리아 주민투표를 주도하면서 내세운 가장 중요한 논리는 “롬바르디아주와 베네토주가 중앙정부가 돌려주는 것보다 각각 540억 유로와 155억 유로를 더 중앙에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를 이룬 이들 지역의 인구 비율은 국가 전체의 17%와 8%를 차지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은 전체의 20%와 10% 이상을 차지한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낙후된 남부를 왜 먹여 살려야 하느냐”는 소지역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도 주민투표 기간 내내 중앙정부의 세금 19%를 책임지고 있는데 정작 예산 지원은 9.5%에 불과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벨기에도 네덜란드어를 주로 쓰는 북부의 플랑드르 지역에서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남부 지방과의 분리 독립을 바라는 의견이 높은데, 그 바탕에는 플랑드르의 훨씬 높은 경제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좌우 이데올로기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 독립은 극우 정당이 이끌고 있지만 스페인 카탈루냐 독립은 극좌 정당이 이끌고 있다. 이번 북부 주민투표로 이탈리아 분열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고 표현한 경제학자 로렌초 코도뇨는 “포퓰리즘 물결에 이어 유럽이 이제 지역주의 물결이라는 또 다른 조류에 직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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