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그런 남자’와 ‘그런 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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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직업이 뭐예요?”

은행원이라는 그녀가 도도한 눈빛으로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인도요리 음식점에서 양고기 카레에 난을 찍어 바르다가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처음 만난 여자가 만난 지 30분도 되지 않아 물어보는 질문치고는 다소 무례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는 남부럽지 않은 일을 하고 계셨지만 저는 반발심에 “집에서 놀고 계세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녀는 8만 원어치 식사를 얻어먹고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총총 사라졌습니다.

2010년 10월 당시 저는 회사 입사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인연을 찾으려다 소개팅을 했는데, 세 번 만에 포기했습니다. 그녀들은 첫 만남에서 “연봉이 얼마냐” “차는 있느냐” 등을 물으며 ‘견적’을 내기 바빴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욱하는 마음에 “연봉은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다” “차는 없고 BMW(‘Bus, Metro, Walk’의 약자) 타고 다닌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후 그녀들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 경험들 때문일까요. 저는 무명의 신인가수 ‘브로’(박영훈·25)의 데뷔곡 ‘그런 남자’가 21일 발표 직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실시간 음반차트 1위에 오르는 상황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런 남자는 조건이 좋은 남성만을 좇으면서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의존적인 일부 한국 여성을 해학적인 가사로 풍자한 발라드입니다. 2030 남자들은 “키 180(cm)은 되면서 연봉 6000(만 원)인 남자가 미쳤다고 너를 만나냐”라며 일침을 놓는 브로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젊은 남자들이 인기 걸그룹도 아닌 무명의 남성 가수에게 이토록 열광하는 건 그동안 속으로만 쌓아둔 ‘일부 여성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 컸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키가 작은 여성은 “내가 키가 작으니 남자가 커야 한다” 하고, 키 큰 여성은 “내가 키가 크니 남자가 커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니 키 180cm가 안 되는 남자는 억장이 무너지지요. 전세금은 억대로 치솟는데 “집은 남자가 해 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2000만∼3000만 원대의 혼수만 해오겠다는 신부를 보면 얄밉기 짝이 없겠지요. 양성평등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아 여성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지만 데이트할 때 지갑을 꺼내지 않으면 ‘쪼잔한 남자’로 몰리니 억울할 수밖에요.

그런 남자 뮤직비디오는 브로와 ‘채널(chaNnel)’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여성이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장면으로 돼 있습니다. 채널은 명품 브랜드 샤넬(chanel)의 오기입니다. 일부 여성이 샤넬의 정확한 스펠링도 모르면서 값비싼 명품만을 좇는다는 풍자이지요. 뮤비를 가만히 살펴보면 브로는 맞춤법을 정확히 지키며 글을 쓰는 데 비해 여성은 틀린 맞춤법을 남발합니다.

브로의 노래가 SNS를 강타하자 3인조 걸그룹 ‘벨로체’는 25일 ‘그런 여자’라는 곡을 내놨습니다. 그런 남자의 가사를 여자의 처지로 바꿔 패러디한 노래입니다. “성형하지 않아도 볼륨감이 넘치는 너를 위한 에어백을 소유한 여자” “성격 좋고 강남미인은 아니지만 건전한 일 하면서 내조 잘하는 여자” 등 이상적인 여성상을 읊다가 “그런 여자가 미쳤다고 너를 만나냐”라고 반박하는 식입니다.

그런 여자의 뮤비는 ‘반츠(Banz)’라는 아이디를 쓰는 남성이 여성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예상대로 반츠는 고급 외제차 벤츠(Benz)를 빗댄 표현입니다. 일부 남성이 허세에 가득 차 고급 외제차로 자신을 포장하려 한다는 비판입니다. 사실 제 주변에도 여성에게 잘 보이려고 가진 돈을 다 털어 BMW나 벤츠 등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기에 나름 현실을 반영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여자는 원작에 비해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네가 멋진 차를 타고 달려도 아무리 비싼 명품으로 휘감아도 숨길 수 없는 단 하나의 진실, 차는 있는데 집이 없잖아”라는 가사에는 여전히 경제적으로는 남성에게 의존하려는 속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남자와 그런 여자는 “뭔가 애매한 것들이 자꾸 꼬인다는 건 너도 애매하다는 얘기”라는 가사를 공통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공감했던 대목입니다. 저는 두 노래를 듣고 “좋은 이성을 만나려면 나부터 애매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곤 헬스클럽에 새로 등록했습니다. ‘그런 남자’와 ‘그런 여자’를 찾는 여러분, 노래를 듣고 대리만족만 하지 말고 스스로부터 애매해지지 않도록 같이 노력합시다!

조동주 사회부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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