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마약을 다루면[오늘과 내일/문권모]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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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은 현실을 담는 그릇… 국산 마약 드라마는 등장 않기를

문권모 채널A콘텐츠편성전략팀장
문권모 채널A콘텐츠편성전략팀장
처음에는 성경의 한 구절을 응용해 글의 서두를 시작하려고 했다. ○○가 □□를 낳고, □□□가 △△를 낳고…. 생각은 참신했지만 결국 그러지 않기로 했다. 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광범위해서였다. 그 대신에 단순하게 이름을 나열해 보기로 했다. 나르코스, 남부의 여왕, 브레이킹 배드, 위즈(Weeds), 엘 차포, 파블로 에스코바르, 간호사 재키…. 이름을 얼마든지 더 댈 수 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이름들은 마약 문제를 다룬 미국 드라마 제목이다. 남미의 마약왕을 다룬 작품(나르코스, 엘 차포)도 있고,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여성이 아이들과 먹고살기 위해 대마초를 파는 드라마(위즈)도 있다.

마약과 관련한 미국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가 하면 모 유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는 마약 관련 드라마만 모아 놓은 섹션이 따로 있고, 주요 영화 소개 사이트에는 ‘가장 인기 있는 마약 카르텔 영화와 드라마’ 같은 콘텐츠가 꼭 있다. 구글에서 마약(drug)을 입력하면 가장 먼저 뜨는 연관 검색어가 마약 TV 프로그램(drug tv shows)이다.

미국의 마약 문제는 뿌리가 깊다. 약 50년 전인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12세 이상 인구의 10.6%가 불법 약물을 투여했다. 2015년 약물 과다 복용 사망자는 5만2404명. 교통사고 사망자(3만7757명)나 총기 사고 사망자(3만6252명)보다 많다. ‘총보다 마약이 무섭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대중예술은 현실을 담는 그릇이다. 전쟁을 치른 나라에서는 전쟁 영화가, 범죄가 많은 나라에서는 범죄 영화가 많이 나온다. 스위스에서 만든 전쟁 영화가 어색하다는 것을 반대 사례로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마약 문제가 심심찮게 이슈가 되고 있다. 올 상반기엔 특히 연예인들의 마약 스캔들이 크게 불거졌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1만2613명의 마약범이 검거됐다. 마약류범죄계수(인구 10만 명당 검거된 마약류 범죄자 수)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임계수치인 20명을 넘은 지가 꽤 됐다. 며칠 전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코카인 100kg이 충남에서 적발됐다.

마약은 생각보다 일반인들 가까이에 있는 것 같다.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마약이 유통되는가 하면 올해 6월 열린 한 음악축제에서는 주최 측이 마약탐지견을 동원해 관객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기도 했다.

국내 영화에서도 마약 범죄가 종종 주요하게 다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드라마에선 마약이 등장하는 사례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누군가는 마약을 메인 소재로 한 드라마 대본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는 개연성, 다시 말해 리얼리티를 얻는 순간 흥행 가능성이란 ‘날개’를 달게 되니까.

여담이지만 올해 5월 말 동아일보에 북한 마약에 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마약을?… 삼엄한 통제 北이 빙두(필로폰)에 빠진 배경은?’이란 제목이었다. 전문가가 내놓은 답은 “마약은 경제력이 있는 당 간부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일반 주민들도 상당수 사용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였다. 처음 마약에 손댄 이들이 돈 있고 ‘백’ 있는 사람들이니 단속에 걸리더라도 쉽게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이 마약은 일반인들에게 퍼져 나갔을 것이다.

같은 민족이지만 이런 건 절대로 닮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침 국내에서도 주로 부유층과 연예인들이 마약 범죄로 언론에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국내 드라마에서 마약을 보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문권모 채널A콘텐츠편성전략팀장 mikemoon@donga.com
#나르코스#남부의 여왕#브래이킹 배드#마약#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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