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은 지금]‘핏빛 다이아몬드’ 설마 내 반지도…

  • 입력 2006년 12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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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핏빛 다이아몬드’의 한 장면. 자료 사진 AP통신
영화 ‘핏빛 다이아몬드’의 한 장면. 자료 사진 AP통신
《미국 내 1910개 극장에서 이달 초 동시 개봉된 영화 ‘핏빛 다이아몬드(Blood Diamond)’가 미국인에게 ‘설마 내 반지도…’라는 일종의 죄의식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12월은 미국 내 다이아몬드 반지 귀고리 등 귀금속 판매의 절반이 이뤄지는 시기. TV만 켜면 “모든 키스(kiss)는 K로 시작해요”라는 광고가 끊이지 않는다. K는 보석상 체인 ‘케이(Kay)’를 뜻한다.

영화는 아프리카 반군(叛軍)이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무고한 민간인을 다이아몬드 불법 채굴에 폭압적으로 동원하면서 벌어지는 굴절된 현실을 다루고 있다. 10대 청소년을 납치해 무자비한 게릴라로 만들고, 다국적 다이아몬드 기업이 뒷거래에 개입하는 내용을 담아 냈다. 1991∼2002년 10년 내전을 치른 서부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이 주 무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출연했다.

미 언론은 “극장을 떠나는 관객들이 성탄절 선물로 주고받은 사랑의 선물에 숨어 있을지 모를 잔혹성에 찜찜해 한다”고 썼다. 실제로 23일 워싱턴 외곽의 한 상영관을 빠져나오는 관람객 가운데 ‘아…’라는 외마디 탄성을 내뱉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때마침 미국 방송은 이 문제를 집중 부각했다. 히스토리채널이 23일 1시간 분량의 특집으로 ‘다이아몬드의 폭력성’을 방송했다. 의회전문 채널인 C-SPAN도 24일 아침 진단프로그램을 방송했다. 평균 시청자 수가 1500만 명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 시에라리온 출신 밴드가 출연했다. 역시 같은 메시지였다.

‘핏빛 다이아몬드’는 어찌 보면 70년 만의 복수일지도 모른다.

1938년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회사인 ‘드 비어스’의 소유주에게 한 장의 메모가 도착한다. 그 메모에는 ‘영화업계가 소녀들의 반지 구입 장면을 다뤄야 한다.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을 공략하라’는 마케팅 전략이 담겨 있었다. 이후 할리우드는 메릴린 먼로의 입을 빌려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메시지 전파에 앞장섰다.

다이아몬드 업계는 지금 ‘핏빛 다이아몬드’가 불러 온 역풍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달 들어 미국 10개 일간지에 전면광고가 등장했다. “문제가 되는 ‘전쟁 다이아몬드’는 전체 유통량의 1%로 줄었다”는 해명과 함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아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도 영화제작사(워너 브러더스)와 감독(에드워드 즈윅)에게 편지를 썼다. “영화가 절대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생산국가의 경제 불안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실제로 다이아몬드 산업에는 2003년 71개국이 참여한 ‘킴벌리 프로세스’가 적용되고 있다. 분쟁국가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가 무기 구입에 사용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규약이다.

2006년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 규모는 600억 달러. 업계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1%인 6억 달러가 ‘핏빛 다이아몬드’다. 통상 반군들에게 돌아가는 원석 값은 시장가격의 10분의 1 수준. 6000만 달러(약 550억 원)는 아직도 총을 든 자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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