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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현 교수의 디자인 읽기]유행예측은 요행이 아닌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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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현 교수의 디자인 읽기]유행예측은 요행이 아닌 과학

입력 2009-07-25 02:56수정 2009-09-2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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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사히맥주의 발포주 ‘혼나마(本生)DRAFT’(왼쪽)와 화장품회사 시세이도의 샴푸 ‘쓰바키’. 빨간색을 제품 디자인에 사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비자들이 특정한 색채에 끌리는 데는 일정한 주기가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1년 일본 아사히맥주가 빨간 캔의 발포주 ‘혼나마(本生)DRAFT’를 출시할 때, 사내에서는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일본인은 저채도의 색을 좋아한다는 통념 탓이었다. 그래서 회사 측은 처음에는 빨간색 면적을 좁게 했다가 반응이 좋다는 걸 확인한 뒤 빨간 부분을 넓혔다.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에서는 2006년 빨간 병에 든 샴푸 ‘쓰바키’를 내놓아 히트시켰다. 이 두 상품은 색채 유행의 흐름을 절묘하게 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통상 색채 유행은 흑백 중심 모노톤과 유채색이 서로 교차하며 사인곡선을 그린다. 그리고 유채색 곡선의 정점으로 다가가면 유채색 가운데서도 빨간색이 강해진다. 2001년 ‘혼나마 DRAFT’가 나올 당시 일본은 유채색 곡선의 정점에 서 있었다. 또 쓰바키가 유행할 당시는 유채색 곡선이 무채색 곡선을 막 추월하기 시작할 때였다. 디자인에 유행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이 유행에 대처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시작한 유행을 남보다 조금 일찍 눈치 채고 ‘이런 게 유행할 것’이라고 해봤자 업종에 따라 전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예컨대 패션업계는 순식간에 새 제품을 선보일 수도 있지만 가구업체에서는 새 유행을 준비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대기업이나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들의 스타일로 유행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유행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유행을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문화 경제 공학적 변수들이 유행에 크게 작용한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녹색이 유행하기도 하고 염료를 사용하지 않은 천연재료가 유행하기도 한다. 새로운 공학기술로 신소재가 개발되면 바로 제품 외형에 적용돼 새로운 유행이 시작된다. 유행의 양상도 다양하다. 청바지처럼 한 번 유행한 제품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짧은 시간에 사라져버리는 것도 있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아사히맥주나 시세이도의 사례에서 보듯 외부 변수가 없다면 유행은 나름의 흐름을 갖고 변화한다. 그래서 평소 유행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측정해 놓으면 어느 정도 예측도 가능해진다. 측정치는 4가지 척도만 있어도 유용하다.

1) 흑백 모노톤-유채색, 앞서 말했듯 유채색의 정점으로 갈수록 빨강이 우세해진다. 금속성 질감은 모노톤으로 간주한다. 2) 둥근 형-각진 형, 모서리나 전체적 윤곽이 둥글고 곡선적인 느낌이 강한 것과 직선적이고 모서리가 각진 형태를 말한다. 3) 광택-무광택, 4) 심플-장식, 때로 ‘미니멀-데코레이션’이라 하기도 하는데 직선이나 원형 등 기하학적으로 단순한 형태가 전자, 바로크 장식처럼 많은 장식과 패턴의 디자인이 후자다. 이 4가지 척도를 7단계 혹은 9단계 정도로 정기적으로 몇 년만 측정해두면 다음 유행에 대한 나름의 예측력이 생긴다. 패션업계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몇 가지 유행 측정척도를 이용하고 있는데 앞의 4가지 척도처럼 디자인 요소를 이용하지 않고 전체적 디자인을 평가하는 방식이어서 다른 상품군에 곧장 적용하기는 어렵다. 보통 1년에 한 번 정도 측정하면 충분하지만 제품군에 따라 반년 혹은 2년마다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측정된 내용들을 통해 어떤 경향을 보려면 앞서 소개한 것처럼 주기그래프를 이용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다른 방식을 함께 사용하는 것도 적극 권장한다. 문제는 어떤 디자인 샘플을 측정할 것인가이다. 해당 상품군에서 당시 히트하고 있는 상품을 포함해 전체적 추세를 알 수 있도록 가급적 모든 상품을 샘플링하는 것이 좋다.

디자인의 유행에 대처하는 또 다른 방식도 있다. 대부분의 소비재는 해당 제품에 앞서 새 유행을 받아들이는 품목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커튼이나 벽지는 식기보다 한 템포 빨리 새 유행을 받아들이고 팬시상품은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유행에 민감하다. 물론 이런 관계가 고정돼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나 생산기술의 발전,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등으로 이런 관계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품이 앞서 유행을 받아들이는 선도품목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유행을 측정하고 예측하는 것은 대기업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소박한 방식으로도 열의만 있으면 얼마든지 나름의 유행 예측력을 가질 수 있고 시장에 선제 대응할 수 있다.

지상현 한성대 교수·미디어디자인콘텐츠학부 psyje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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