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433개 神話로 보는 동남아-남미 농경문화의 起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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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누웰레 신화/아돌프 엘레가르트 옌젠, 헤르만 니게마이어 지음/이혜정 옮김/804쪽·2만9000원·뮤진트리

멀고 먼 옛날 하이누웰레라 불리는 소녀가 있었다. ‘야자나무 가지’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제 몸에서 중국 도자기, 금 귀걸이, 산호 같은 보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시샘해 죽이고 말았다. 소녀의 시신은 여러 조각으로 절단돼 묻혔고, 그 자리마다 소녀의 몸을 닮은 식용 구근이 자라났다.

이 이야기는 인도네시아 세람 섬의 농경 기원 신화다. 지금도 오지로 꼽히는 이 섬의 신화가 세상에 알려진 데는 독일 인류학자의 공이 컸다. 이 신화를 발굴한 저자들은 1937년 2월부터 1938년 3월까지 탐사대를 이끌고 세람 섬을 비롯한 말루쿠(몰루카) 제도와 당시 네덜란드령이었던 뉴기니 섬을 답사했다. 유럽인에게 적대적인 원주민을 설득해가며 옛 이야기를 채록했다.

이들은 귀국한 뒤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1939년에 이 책을 출간했다.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에서 농경 기원 신화의 대표적인 유형을 담은 설화를 발견한 것은 당시 학계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저자들은 이 신화를 바탕으로 세계의 농경 신화를 ‘하이누웰레형’과 ‘프로메테우스형’으로 분류했다. 하이누웰레형은 신이나 거인 또는 인간의 시체나 배설물에서 식용 작물이 생겨났다는 것이고, 프로메테우스형은 하늘이나 외부 세계에서 곡식 낟알을 훔쳐오거나 선물로 받아온다는 것이다.

800쪽이 넘는 이 두툼한 책에는 동남아와 남미 지역 농경 문화권에 수천 년 동안 전승된 하이누웰레형 신화 433편이 담겼다. 태고 신화, 정령, 동물, 식물, 돌, 인간까지 모두 6장으로 분류된 이 신화는 만물의 탄생과 기원이 죽음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상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준다.

인간이 죽어서 인간을 먹여 살리는 식물로 환생하고, 최초로 살인을 저지른 인간은 정령이 된다. 동물은 남자로, 식물 열매는 여자로 변신한다. 숲에서 남몰래 일을 도와주던 젊은 남자가 실은 쿠쑤(유대류 동물)였다는 신화는 우리의 ‘우렁각시’를 떠올리게 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역 출간됐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하이누웰레 신화#인도네시아 세람 섬#농경 기원 신화#농경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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