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지식의 샘’은 어떻게 생겨나고 진화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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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탄생/뤼시앵 페브르, 앙리 장 마르탱 지음/강주헌 배영란 옮김/761쪽·3만8000원·돌베개

오늘날 우리가 읽는 책의 형태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가에 관한 책들의 시조로 꼽힌다. 저자 중 뤼시앵 페브르(1878∼1956)는 프랑스 아날학파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아날학파는 정치경제 중심의 거대사에 치중하던 역사연구의 흐름을 사회사와 문화사까지 아우르는 미시사와 일상사로 확장시켰다. 앙리 장 마르탱(1924∼2007)은 페브르의 제자로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 발명 이후 300년간 유럽에서 벌어진 사회경제적 변화의 실증적 사료를 발굴한 문헌학자다.

책의 원제(L'apparition du Livre)를 그대로 번역하면 ‘책의 출현’이다. 프랑스에서 이 책의 초판이 ‘인류의 진화’ 총서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된 해가 1958년. ‘책의 출현’이 국내 출현하는 데 56년이 걸린 것이다.

양피지와 종이의 경쟁, 활판인쇄술이 가져온 출판업의 변화, 인쇄 장인과 서적상, 저자와 같은 다양한 직종의 변천, 검열과 금서의 역사까지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이미 소개됐다. 2004년 번역된 소피 카사뉴브루케의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나 2012년 번역된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같은 번역서는 물론이고 주명철의 ‘서양금서의 문화사(2006년), 육영수의 ‘책과 독서의 문화사’(2010년), 강명관의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2014년) 같은 국내 연구서도 이 책에 빚을 지고 있다.

하지만 역시 원전을 읽다보면 보다 깊고 풍성한 정보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인쇄술의 발전이 암송과 낭독의 문화를 묵독의 문화로 바꿔놨으며 성경의 확산이 종교개혁을 가져왔음을 적시했다. 또한 개별 민족어와 구어체의 확산 및 발전을 낳았음을 밝혀 놨으나 그것이 민족주의 발현의 통찰에까진 이르지 못했다.

2003년 국내 번역 출간됐다가 이번 주 출판사(알마)를 바꿔 새로 출간된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1996년)과 함께 읽어볼 만하다. 이 책은 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킨 금서들이 혁명을 부추긴 계몽주의 사상서가 아니라 당시 앙시앵 레짐 체제에 도덕적 균열을 가져온 도색서적이나 정치적 중상비방서였음을 실증연구로 보여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책의 탄생#뤼시앵 페브르#아날학파#앙리 장 마르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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