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차트 전체 재생하는 습관…나만의 취향이 사라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0일 16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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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옷차림을 통해 한 사람에 관한 많은 정보를 유추한다. 누군가의 취향을 드러내는 가장 직관적 요소여서다. 운동화를 즐겨 신는 사람은 구두를 신는 사람에 비해 실용성과 편안함을 중시하고, 컬러풀한 옷을 즐겨 입는 사람은 무채색을 선호하는 사람에 비해 활달하고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 같은 인상을 받는 식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역이용해 자기연출을 하기도 한다. 나는 실제로 환불을 하러 갈 땐 무서운 깍쟁이로 보여야 ‘거사’(?)가 쉽게 처리될 것 같은 마음에 굳이 안경을 쓴 적이 있다. 어른들을 만나 잘 보여야할 일이 있을 때엔 단정한 크림색 블라우스를 꺼내 입는다.

옷차림이 취향을 나타낸다는 사실은 취향을 옷차림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성인의 옷차림은 실제 취향이 어떻게 보여 지고자 하는 욕망이 더해진, 본인의 취향을 토대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취향이란 것은 이렇게 생동감 있는 심리 현상으로 인해 단단히 다져진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란 것이 유행하던 시절, 음반시장에는 새로운 지표가 생겼다. 바로 각자의 미니홈피에서 흘러나오던 배경음악(BGM) 차트다. BGM 차트는 인기 음원 차트와는 또 달랐다. BGM이란 것은 나를 ‘나타내는’ 음악이지 ‘듣는’ 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향수, 옷차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이 BGM이다. 음악 또한 듣고 싶은 음악과 나를 나타내고 싶어 하는 음악이 따로 존재함을 보여준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벨소리와 통화 연결음도 마찬가지. 내가 들어 반가운 음악은 벨소리로, 나를 소개하는 음악은 컬러링으로 쓰였다. 벨소리, 컬러링 차트 역시 존재했고, 욕망과 실제 취향 사이의 틈만큼 두 차트에는 차이가 있었다.

실제 음악 취향이란 것이 뼈대를 갖추는 때는 10대인 것 같다. 취향이 분명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학창시절을 지배했던 음악세계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이 때 갖춰진 뼈대에 좋아하는 사람의 플레이리스트, 나의 사적인 순간들과 맞닿은 음악들이 살이 되어 한 사람의 음악적 취향이 형성된다. 취향을 가지고 높낮이 구분을 하는 것은 모두에게 금기사항이지만, 사람들은 은연중에 이로 인해 평가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구석이 있다. 취향이란 것이 내가 살아온 궤적을 드러내는 지표 중 하나라서가 아닐까.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라는 말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어떤 것이 대외적으로 떳떳하지 못할 때에 쓰인다. 음악, 영화, 책은 비밀리에 가장 많은 길티플레저가 존재하는 영역 같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를 대답할 때, 즐겨듣는 음악을 말할 때 동공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취향 존중’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또 취향에 있어 지나친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이런 부류는 몰취향인 자들보다 눈꼴사납다. 취향이라는 것, 생각보다 복잡 미묘한 녀석이다. 분명한건, 취향은 내 인생이 그저 사회적 역할로만 점철되지 않게 해주는 윤활유라는 점이다.

최근 들어 음악에 있어 취향이 불분명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나는 상당 부분이 요즘의 음원 차트에 있다고 본다. 차트란 것은 현상을 비추는 거울을 역할로 탄생했지만, 이제는 현상 그 자체가 됐다. 의혹만 무성한 사재기 논란도 이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테다. 인기가 있어 차트에 올라 있는 것이 아니라, 차트에 있어서 인기가 따라오는 현상의 역순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할거라는 합리적인 의심. 최신 음악을 1위부터 100위까지 전체 재생하는 습관은 자기가 형성해 나갈 수 있는 취향의 세계를 부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를 경계하듯, 요즘은 취향을 기준으로 하는 미디어 플랫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 곳들은 인기 순위를 최전선에 노출시키지 않고, 내가 듣고 보는 것을 기준으로 콘텐츠를 추천한다. 물론 내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받으려면 데이터베이스를 꽤 쌓아야 하지만, 나는 이런 곳들이 대중에게 더욱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저마다 각기 다른 모양의 풍성한 취향을 가진 세상은 그만큼 다양한 이해와 소통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기에.

중년을 넘어가며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어’라는 탄식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충실한 태도이자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행위다. 우리, 나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추천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취향을 지켜나가자. 지금 당신이 듣고 싶은 음악이 궁금하다.

김이나 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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