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타는 국토-3/물부족 '물전쟁'온다]지자체 "우리물" 다툼 위험수위

  • 입력 2001년 6월 5일 19시 00분


“우리 물을 왜 가져가.” “흐르는 물인데 임자가 어디 있어.” 국내에도 ‘물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용수 배분과 취수장 건설, 상수원 보호 문제 등을 둘러싸고 주민들간, 관련 자치단체간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물꼬’ 싸움〓전북 진안군 용담면 용담다목적댐. 산간지대를 막아 건설된 높이 70m, 길이 498m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쪽으로 전북 장수군 장수읍 신무산 뜬봉샘에서 내려온 강물이 서서히 흘러 들고 있다. 지난해 10월 완공돼 11월9일 담수가 시작됐지만 현재 수위는 해발 227.82m로 저수목표량의 7%에 불과하다. 다목적댐은 통상 축조 1년 내에 상시 만수위(용담댐의 경우 260m)에 도달한다. 대전과 충남북 등 대청댐 유역 3개 시도와 전북도가 용담댐의 물 배분에 이견을 보여 담수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갈등은 98년 수자원공사가 용담댐에서 방류하는 초당 약 21t 가운데 15.6t을 전북지역 생활용수로 보내고 5.4t만 하류로 내려보내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충청권 지자체들은 전북 지역으로 물이 많이 가면 공동 식수원인 대청호의 강물 유입량이 줄어들어 수질 악화를 피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식수난을 겪고 있는 전북도는 지역 이기주의라며 수자원공사측에 당초 계획대로 추진할 것을 요구해 논란이 제기됐다.

▼글 싣는 순서▼

1. 물물물…목타는 국토
2. 요르단강을 잡아라
3. '아랍형' 남의 일 아니다
4. 물부족, 과학으로 해결?
5. 물은 생명이다

충청권 지자체들과 전북도는 올 3월 말 수계별 협의회를 열고 합리적인 용수 배분을 위한 공동용역을 발주키로 합의했으나 방류량 산정방법과 공동조사단 구성 등에 여전히 이견이 크다.

충청권은 “수자원공사가 용담댐 방류량을 산정할 때 2021년 기준 전북권 인구를 389만명으로 잡았지만 충남대 환경문제연구소는 254만명 정도로 추정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환경단체를 포함시킨 제3의 전문연구기관을 선정해 물 수요를 전면 재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전북권은 “관련 지자체와 환경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동조사단만으로도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며 “환경단체들까지 조사단에 들어오면 대청호 수질 오염 문제만 부각시켜 원만한 해결책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양측이 의견을 모으지 못하면 1조4000여억원을 들인 댐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충북 제천과 강원 영월간 ‘취수장 분쟁’도 물싸움의 또 다른 사례. 92년 제천시가 상수도 수요를 위해 평창강에 장곡취수장을 건설하려 하자 하류 지점인 영월군이 물 부족을 이유로 반대했다. 환경부가 중재에 나섰지만 양측의 의견 차이가 워낙 커 현재까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수질 분쟁〓낙동강 수질오염 논란 때문에 대구 위천공단 조성 문제가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대구시는 달성군 낙동강변에 304만평 규모의 위천국가공단 조성을 추진해 왔으나 부산시와 경남도는 수질오염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낙동강 하류지역의 수질 때문에 중상류지역의 개발을 제한하겠다는 발상은 가뜩이나 낙후된 대구 경북지역을 고사시키려는 처사”라며 “통제가 불가능한 소규모 불법 공장들이 난립하는 것보다는 체계적으로 폐수를 처리하는 대규모 공단 조성이 수질 보호에도 더 좋다”고 주장했다.

부산시 오홍석(吳洪錫) 환경국장은 “수돗물 불신이 극에 달한 부산 시민에게 ‘낙동강 살리기’는 사활이 걸린 문제인 만큼 위천공단 조성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무기력한 중앙 정부〓총리실에 수질개선기획단이 있지만 ‘표’를 의식한 자치단체장들의 지역 이기주의적 요구와 주장에는 속수무책이다. 총리실이 주도해 최근 새만금사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했으나 지자체들의 분쟁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화여대 박석순(朴錫淳·환경공학과) 교수는 “물 분쟁은 지자체나 정부 부처간에 이해 관계가 얽혀 있어 양보하는 쪽에 재정적인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다”며 “총리실에 예산 배정 권한을 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 대책은 없나〓전문가들은 물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인 ‘수리권(水利權)’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물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진국의 경우 여러 지자체를 통과하는 하천이 있으면 인구수와 하천과 접하는 면적 등에 따라 사용량을 정해 그 범위 내에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 물이 모자라면 여유가 있는 인근 지자체로부터 사서 사용하도록 돼 있다.

서울대 이정전(李正典) 환경대학원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하천이 국가 소유라 누구나 공짜로 사용하는 공공재산으로 여기고 있다”며 “수리권이 명확하게 구분되면 분쟁의 여지가 없어지고 절수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진흡기자>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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