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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기자의 애니 인물열전]히사이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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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기자의 애니 인물열전]히사이시 조

입력 2001-01-26 19:16수정 2009-09-2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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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을 귀로 즐긴다'

- 애니메이션 음악 작곡가 히사이시 조(久石 讓)

일본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무엇일까? 시선을 확 끄는 선명한 인상의 캐릭터. 기발한 아이디어와 복선으로 꾸며진 스토리. 관객의 호흡을 절묘하게 조절하는 감각적인 편집.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 꼽는다면 아마 감각적인 배경 음악과 주제가일 것이다.

일본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들이 아직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던 시절, 어렵게 구해 본 작품들은 영상과 함께 음악도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다. 애니메이션 음악하면 으레 행진곡이나 동요풍의 멜로디가 전부인줄 알았던 이들에게 일반 실사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감각적인 멜로디를 지닌 일본 애니메이션의 음악들은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과 감동의 중심에 히사이시 조(久石 讓)가 있었다.

히사이시 조는 가와이 겐지, 간노 요코 등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중 한 명으로 꼽힌다. 특히 그는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명콤비로 유명하다. 그와 미야자키가 손잡고 만든 첫 작품은 지난 연말 국내에 개봉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84년). 이후 86년 <천공의 성 라퓨타>, 87년 <이웃의 토토로>, 89년 <마녀의 택배>, 92년 <빨간 돼지>, 97년 <원령공주> 등 6편에 이른다. 미야자키의 감독 데뷔작인 <루팡 3세 카리오스트로성>(79년)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은 모두 그가 음악을 맡았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단순히 이야기 전개나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돕는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미야자키의 작품에서 그의 음악은 영상과 함께 작품의 주제를 끌어내는 핵심적인 표현수단이다. 또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나즈막히 흐르던 어린이의 스캣송이나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비장감 넘친 선율은 관객이 작품에 감정을 몰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중요한 도구이다.

눈을 감고 귀로만 들어도 작품의 메시지와 감정이 선연하게 떠오르는 그의 음악은 유명한 애니메이션 음악 작곡가 노먼 로저스의 말처럼 "귀로 감상하는 애니메이션"이다.

- 16년에 걸친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인연

히사이시 조는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는 등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일본 국립음대 작곡과에 재학하던 시절 그는 작곡가와 편곡가, 그리고 피아노 연주자로 폭넓은 음악활동을 해왔다.

그가 음악 인생에 큰 전기를 맞은 것은 84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만나면서이다. 두 사람의 첫 합작품이자 히사이시 조의 애니메이션 음악 데뷔작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제2회 애니메이션 대상'에서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그는 미야자키와 16년에 걸친 단짝으로 작품활동을 같이하게 됐다.

두 사람은 다른 애니메이션 작업과 달리 영상보다 음악을 먼저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우선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기 6개월 전부터 서로간의 대화나 이미지 보드를 통해 작품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대화를 통해 주제에 대해 서로 공감을 하면 이를 바탕으로 '이미지 앨범'이라는 것을 제작한다. 앞으로 제작할 작품의 중요한 테마 몇가지를 음악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테마를 어떤 장면에 넣을 것인가'를 논의를 하면서 사운드 트랙을 제작한다. 이때는 이미지 앨범에 있던 테마 음악을 좀 더 보강하기도 하고 편곡이나 변주를 통해 세세한 장면에 필요한 음악들도 만든다.

미야자키와 히사이시의 독특한 작업 스타일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방식이다. 여기에는 남다른 음악적 감각을 지닌 미야자키의 재능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차게 & 아스카'의 음악 '온 유어 마크(On Your Mark)'를 소재로 한 동명의 단편에서 보여준 영상 리듬감각에서 알 수 있듯이 미야자키의 음악을 파악하는 센스는 무척 날카롭다. 그는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의 토토로> <원령공주>의 주제가 가사를 직접 쓰기도 했다.

미야자키와 히사이시가 흔히 '황금의 콤비'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이렇듯 음악과 영상에서 상대의 재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교감이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클래식에서 플라멩고까지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

애니메이션 음악 작곡가로서 히사이시 조가 지닌 강점은 작품에 따라 다양한 음악적 색채를 펼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카우보이 비밥>의 간노 요코처럼 역동적이고 비트가 강한 모던한 사운드를 구사하기 보다는 현을 강조하는 서정적인 멜로디를 즐겨 사용한다. 이러한 사운드가 작품의 소재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변화하는 것이 '히사이시 조 음악'의 특징이다.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에 사용된 스캣송은 중앙 아시아 민요를 연상케 한다. 또 <붉은 돼지>에서는 1차대전 전후의 시대 배경의 맛을 살리기 위해 낭만적인 샹송을 차용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마녀의 택배>에서는 플라멩고 리듬의 기타 선율을 들을 수 있다. 작품에 따라 외국의 민요도 즐겨 차용하지만, <공각기동대>의 가와이 겐지가 들려준 것처럼 이국적인 색채를 지나치게 강조하지도 않는다. 차용한 음악들은 그의 손에서 세련되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재창조된다. 하지만 풍부한 감성을 강조하는 그의 음악은 때로는 '절제가 없는 감정 과잉'이나 '스트레오타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 애니메이션에서 다큐멘터리, 그리고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

흔히 히사이시 조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음악으로만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는 애니메이션 외에 실사영화의 음악으로도 명성이 높다.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현재 일본영화계의 대표적인 감독인 기타노 타케시의 작품들. 히사이시 조는 키타노 다케시의 영화 <소나티네> <키즈 리턴> <하나비>등 주요 작품의 음악을 맡았다. 그밖에 애니메이션 <아리온> <메존 일각> 영화 <타스메니아 이야기> <청춘 덴데케데케데케>, NHK 다큐멘터리 <경이로운 소우주, 인체>, 그리고 98년 나고야 동계 장애인올림픽의 음악감독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이처럼 분주히 활동하면서도 자신의 솔로 앨범과 함께 다른 가수들의 앨범도 프로듀스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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