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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플래시100]매질 없앴다지만… 대신 ‘인간 콩나물 시루’ 감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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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플래시100]매질 없앴다지만… 대신 ‘인간 콩나물 시루’ 감옥에

이진 기자 입력 2020-02-18 15:06수정 2020-03-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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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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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1일자 3면 머리기사의 제목은 ‘태형(笞刑)을 근폐(僅廢)’입니다. 근(僅)은 ‘겨우’ 또는 ‘간신히’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제목은 ‘태형이 간신히 없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죄인을 매질해 다스리는 야만적인 형벌을 벌써부터 없애라는 목소리가 높았는데도 이제야 겨우 없앴다는 불만이 담겨있는 제목이죠. 요즘은 동물도 함부로 때리지 못하는 세상이지만 100년 전의 일제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법으로 정해놓고 때렸습니다.

태형은 동아일보 창간일의 하루 전날인 1920년 3월 31일이 마지막 시행일이었습니다. 일제 총독부가 태형령을 폐지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사라진 것이죠. 태형령의 공식명칭은 ‘조선태형령’으로 1912년 3월부터 시행됐습니다. 죄인을 십자가 모양의 형틀에 엎드리게 한 뒤 양팔을 벌리게 해 묶고 두 다리도 묶습니다. 이어 죄인의 바지를 내려 엉덩이 맨살을 드러낸 다음 대나무 묶음 회초리로 때렸습니다. 비명을 지를까봐 물에 적신 헝겊으로 죄인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자유민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무렵인 1882년에 태형을 전근대적이라며 폐지했습니다. 그런데 일제는 한반도에서 그것도 일본인 등 외국인을 제외하고 조선인들만을 대상으로 ‘매질 형벌’을 계속 시행했습니다. 겉으로는 조선인이나 일본인이나 같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조선인의 민도가 낮다는 이유로 매질을 해댄 것이었죠. 이때 일제는 ‘조선 사람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 한다’는 말을 앞세웠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 전체를 열등한 민족으로 낙인찍고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알게 모르게 받아들이도록 했던 것입니다.


태형은 집행하는 쪽에서는 효과가 바로 나타나고 간단한데다 감옥에 보낼 필요가 없어 비용도 들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맞는 쪽에서는 속으로 굴욕감을 느끼고 몸에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 상처가 남았습니다. 태형은 30대가 보통이었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맞거나 모질게 맞아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감옥 또는 즉결관서에서 비밀리에 행한다’는 규정으로 창피를 덜 당해 그나마 위안이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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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질도 무섭지만 태형을 결정하는 과정은 ‘엿장수 마음대로’였습니다. 헌병이나 경찰이 재판 없이 즉결처분으로 태형을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개월 이하 징역이나 구류형, 또는 100원 이하 벌금이나 과료를 받을 죄라면 태형으로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조선인에게는 칼 찬 헌병이나 순사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떼쓰는 아이에게 “순사 온다”라고 겁을 준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그럼 태형이 없어졌으니 죄인들이 받는 형벌은 한결 나아질까요? ‘태형을 근폐’ 기사는 바로 이 점을 짚었습니다. 미즈노 렌타로 정무총감이 “감옥과 간수를 많이 늘려서 태형 대신 구금을 시키겠다”고 말한 내용을 검증한 것이죠. 먼저 3년 평균 태형 대수를 260만8992대로 계산했습니다. 태형 1대는 감옥 하루와 같으니까 태형 폐지로 이 대수의 날짜만큼 죄인이 감옥에 더 갇혀있게 됩니다. 여기서 감옥 대신 유치장에 머무는 단기 수형자 등을 뺀 뒤 이를 365일로 나누면 하루 평균 8607명이 감옥에 더 가야 하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1920년에 이미 감옥은 만원이었습니다. 대만 등에서는 감방 1평(3.3㎥)에 평균 1명이 생활하지만 조선에서는 평균 2명이 기준이었습니다. 실제로는 1평에 평균 4명 이상을 집어넣었고 여기에 태형 폐지로 8607명이 추가되면 감방은 ‘인간 콩나물시루’로 바뀔 것이 분명했죠. 범죄 유형이나 죄인 성격 등을 따져 1평에 8, 9명을 집어넣는 일도 흔했습니다. 죄인들은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자거나 심지어는 서서 잘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총독부는 감옥을 늘린다고 했지만 돈이 모자라 함석지붕에 철조망을 둘러친 엉성한 곳도 많았습니다. 갇힌 사람들의 고통은 무슨 말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笞刑(태형)을 僅廢(근폐)

사월일일부터 태형을 폐지
그 대신에난 징역이나 구류

잇던 것이라도 폐하지 안이하면 안될 때에 새 법령을 뎡하야 일반을 곤난케 하고 내외국인의게 비샹한 공격을 밧으면서도 재졍이 부족하니 시긔가 일흐니 벌 핑계를 다하며 폐지를 안이하랴던 바 조선에서도 조선사람의게만 한하야 쓰이던 태형제도도 변쳔하는 시세가 당국쟈를 모라서 드듸여 금일부터는 폐지하게 되얏다. 이에 대하야 ㅤ춍독부 수야 정무ㅤ춍감은 말하되

廢止(폐지)에 伴(반)하난 施設(시설)

감옥과 간수를 만히 느려서
태형 대신에 구금을 식힌다

笞刑廢止(태형폐지)와
在監者(재감자) 增加(증가)

태형폐지의 결과 재감자의 수가 증가할 것은 당연한 리치라. 최근 삼개년 간의 평균 태형 밧은 수효를 계산하면 재판사건과 범죄즉결사건을 합하야 일개년에 인원 수효가 오만칠쳔삼백이십사인이요 그 집행한 태형의 도수(재판사건 일인평균 칠십일도、즉결사건 일인평균 삼십칠도를 계산하면 이백육십칠만팔쳔오백이십도나 되며 이것을 형긔(刑期))로 환산하면 이백육십칠만팔쳔오백이십일이 되지마는 이중에서 태형을 집행키 위하야 태형집행하기 젼에 감옥 또는 즉결 관서에서 구금(拘禁)한 일수가 육만구쳔오백이십팔일이 잇슴으로써 이 일자를 제하고 그 나마지 일자

이백륙십만팔쳔구백구십이일은 태형폐지로 새로 감옥에 구금할 일자 수효라. 그러나 형긔 삼십일 미만의 수형자는 경찰서 류치장에서 집행하고 감옥에 보내지 아니하는 것인즉 젼긔 일자 중에서 다시 이 일자와 가장 단긔수형자(短期受刑者)에 대한 형긔를 빠이고 보면 실제 일년 간에 감옥에서 집행할 일자는 이백사십일만사쳔구백일이요 이것을 일년의 일자 삼백육십오일로 졔를 하면 팔쳔육백칠명은 즉 태형폐지 때문에 하루 평균 증가하는 세음이리.

笞刑廢止(태형폐지)와
監獄擴張(감옥확장)

감옥셜비의 완비한 여부는 형사집행상 ㅤ즁요한 관계가 잇는 즁 감방의 부족은 죄수를 수용하는데 다대한 곤란이 잇는고로 재감자 구금의 표쥰은 감방 한 평에 평균 이인 이하를 두는 것이 뎍당하다고 한다. 대만 등디의 감옥이 감방 한 평에 평균 한 사람식을 구금하는 것을 보아도 명백한 사실이라. 그런데 조선의 대졍 팔년도 말의 감방 ㅤ춍 펑수는 겨우 이쳔구백여평이라. 최근 삼년 간 평균 저감 인수 일만일쳔육백이십육인에 대하야 감방 한 평에 평균 구금인원을 보면 네 사람 이상이나 되고 다시

형벌 밧은 자의 범죄 셩질 성격 등을 따라 분류 구금하는 실지 상황을 보면 한 평에 흔이 평균 팔구인이나 되여 구금인수가 늘― 초과하엿셧다. 이러한 현상이닛가 태형페지에 인하야 증가할 수 업슬 것은 물론이요. 더구나 이러한 단긔자유형(短自由刑(단자유형) 집행에 당하야 그 폐해를 업시하고 형벌의 집행을 뎍당히 하자 하면 감옥의 셜비는 극히 완젼한 규모와 계획으로 셰워야 하겟다. 그러나 한편으로 재졍관계도 잇슴으로써 현재의 상태인 감방에 평균 네 사람씩 들 예졍으로

졔반의 계획을 하고 긔왕 설치한 분감(分監) 오개쇼를 본감(本監)으로 확장하고 기외 본감、분감 십삼개쇼에 감방과 공장을 림시로 증츅하고 또 형벌집행하는데 편리를 생각하야 새로 분감 사개쇼、츌장쇼 삼개쇼를 셜치할 예정이라.

새로 셜치할 본감 출장쇼의 위치에 대하야는 수용관게를 생각하야 졍할 것은 물논이나 위치를 선졍하는데 대하야는 위생、작업、풍교、기외 여러가지 사졍이 잇는고로 아즉은 발표되지 아니햐얏다. 그리고 이 건츅비에 대하야는 대정 팔년도 즁에서 이십만 원을 지츌하야 림시의 확장공사를 하고

그 외 대부분은 대정 구십 량년도의 계속공사로 할 터인대 그 춍 비용액은 이백오십여만 원이나 들며 또 이로 인하야 매년 경비가 이전보다 팔십만 원 이상이 되며 감옥의 관리를 사백사십륙인이나 느리게 되엿더라.




현대문
태형을 간신히 폐지

4월 1일부터 태평을 폐지
그 대신에 징역이나 구류

있던 것이라도 없애지 않으면 안 될 때에 새 법령을 정해 일반인을 곤란하게 하고 내외국인에게 눈에 띄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재정이 부족하다, 시기가 이르다, 별 핑계를 다 대며 폐지하지 않으려던, 조선에서도 조선사람에게만 한정해 적용하던 태형제도도 변화하는 시세가 당국자를 다그쳐 드디어 1일부터 폐지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총독부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郞) 정무총감은 이렇게 말하였다.

폐지에 따르는 시설
감옥과 간수를 많이 늘려서
태형 대신에 구금을 시키겠다

태형폐지와
재감자 증가

태형폐지의 결과 재감자 수가 증가할 것은 당연한 이치다. 최근 3년 간 평균 태형 받은 수를 계산하면 재판사건과 즉결사건을 합산해 1년에 인원 수가 5만7324명이고 집행한 태형 대수(재판사건 1인 평균 71대, 즉결사건 1인 평균 37대를 계산하면 267만8520대나 되며 이를 형기)로 환산하면 267만8520일이 된다. 하지만 이 가운데 태형을 집행하기 위하여 집행 전에 감옥이나 즉결대기소에서 구금한 일수가 6만9528일이 있으므로 이 기간을 빼고 그 나머지 일수 260만8992일은 태형폐지로 새로 감옥에 구금할 일자 수다.

그러나 형기 30일 미만 수형자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맡고 감옥에 보내지 않으므로 앞의 일수에서 다시 이 기간과 최단기 수형자의 형기를 빼고 보면 실제 1년 간 감옥에서 보내야 할 일수는 241만4900일이다. 이를 1년 365일로 나누면 8607명이 바로 태평폐지 때문에 하루 평균 증가하는 계산이 나온다.

태형폐지와
감옥 확장

감옥설비를 완비했는지 여부가 형사집행 상 중요한 가운데 감방 부족은 죄수를 수용하는데 큰 곤란이 따른다. 재감자 구금 표준은 감방 1평에 평균 2명 이하를 두는 것이 적당하다고 한다. 대만 등지의 감옥이 감방 1평에 평균 한 사람씩 구금하는 것을 보아도 명백하다. 그런데 조선에서 1919년 말 감방의 총 평수는 겨우 2900여 평이다. 최근 3년 간 평균 재감 인수 1만1626명을 감안하면 감방 1평에 평균 구금인원이 4명 이상이나 된다.

또 형벌 받는 사람의 범죄 성향이나 성격 등에 따라 나눠 구금하는 실제 상황을 보면 1평에 흔히 8, 9명이나 돼 구금 인수가 늘 초과했었다. 이러한 상황이므로 태형폐지로 인해 (감옥이) 증가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이러한 단기자유형 집행을 할 때 폐해를 없애고 형벌을 적당히 집행하려고 하면 감옥 설비는 아주 완전하게 규모와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재정문제도 있으므로 현재 상태로는 감방에 평균 4명씩 들어갈 예정이다.

여러 계획을 세우고 이미 설치한 분감 5곳을 본감으로 확장하고 그 외 본감, 분감 13곳에 감방과 공장을 임시 증축하고 또 형벌을 집행하는 편리를 감안해 새로 분감 4곳, 출장소 3곳을 설치할 예정이다.

새로 설치할 본감 출장소 위치에 대해서는 수용문제를 생각하여 정할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위치를 선정하는데는 위생과 작업, 교화 기타 여러 가지 사정이 있으므로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그리고 건축비는 1919년 재정에서 20만 원을 지출해 임시 확장공사를 하고 그 외 대부분은 1920, 1921년 두 해의 계속공사로 할 예정으로 총 비용은 250여만 원이나 들며 또 이로 인해 매년 경비가 이전보다 80만 원 이상 돼 감옥 관리를 446명이나 늘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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