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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전 남성지배 문단서… 중진 평론가에 맞선 신인 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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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전 남성지배 문단서… 중진 평론가에 맞선 신인 여성작가

조종엽 기자 입력 2019-10-18 03:00수정 2019-10-2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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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정신 부족” “사회성 요구 엉뚱”… 백철-강신재, 본보 지면서 논쟁
연남경 교수 학술회의 발표문서… “문학비평 정립기 핵심적 문제 제기”
강신재 소설가(오른쪽 사진)가 동아일보 1959년 5월 27일자에 기고한 ‘평론가의 예술적 감각 하(下)’(가운데 사진). 백철 평론가의 혹평을 반박한 이 글은 신인 여성 작가가 기성 남자 비평가의 위력에 맞선 ‘사건’으로 평가된다. 동아일보DB

“이러한 유의 비평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문학에 과연 어느 정도로 유용할 것인가.”(강신재 소설가·1924∼2001)

1959년 5월 26, 27일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한 소설가가 비평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사수(射手)는 등단 10년이 된 여성 소설가 강신재 씨. 앞서 백철 평론가(1908∼1985)가 자신의 신작 ‘절벽’을 혹평하자 이를 하나하나 반박한 것이다. 강 씨는 “나는 (백)씨의 두뇌 구조나 센스에 대해서 생각해 볼 뿐”이라는 신랄한 표현과 함께 ‘평론가의 예술적 감각―백철 씨의 평을 박(駁)한다’는 글을 2회에 걸쳐 실었다.

백 평론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백철은 평론 경력이 30년에 가까웠고, 당시 문단의 몇 안 되는 전업 평론가이기도 했다. 나이도 강 씨보다 열여섯 살이 많았다. 백 평론가는 ‘문장과 이미지의 간격―강신재 씨에게 답함’이라는 재반박 글을 2회에 걸쳐 기고하면서 “아직 습작기도 넘어서지 못한 젊은 작가들이 함부로 할 수 있는 망언이 아닌 것 같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연남경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이 논쟁에 주목했다. 연 교수는 26일 발표 예정인 글 ‘현대비평의 수립, 혹은 통설의 탄생’에서 “거의 기억되지 않은 이 짧은 논쟁은 현대비평이 수립되고 현대문학의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문제제기가 잠시 이뤄진 순간”이라고 봤다. “신인 여성 작가가 기성 남자 비평가의 위력에 항변하며 현대문학의 수립 방향에 이견을 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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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평론가는 ‘절벽’이 여인의 신변 이야기이기에 작품의 질이 빈약하며, 문장의 수사가 혼란스럽다고 비평했다. 연 교수에 따르면 이런 관점은 당대 문단이 여성 신인을 바라보는 통상의 시선이었다. 1950년대 비평뿐 아니라 1960년대 문단을 휘어잡은 ‘4·19세대’의 비평도 마찬가지였다. ‘현실 참여’라는 주류 지식인 남성들의 이념을 공유하지 않았던 강 씨의 소설은 ‘지성의 결여’로 치부됐다. 연 교수는 “엘리트 남성이 주도한 비평 담론은 여성 작가의 작품을 ‘산문정신의 실패’나 ‘현실인식의 부족’으로 규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 씨는 자신의 글에서 “소설에는 그 소설 자체의 분위기와 흐름이 있다. … 이것은 소설이 지닌 이념, 혹은 사회성이라는 것과 동등하게 중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작품과 무관하게 이념이나 사회성을 엉뚱하게 요구하는 데 반기를 든 것이다.

강 씨는 화제를 불러일으킨 1962년 작품 ‘젊은 느티나무’를 비롯해 수많은 소설을 오래도록 썼다. 1990년대 들어서는 “남성 작가들의 비현실적 서정성과 다른, 현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한 서사적 서정성”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 교수의 발표문은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이 개원 60주년을 기념해 26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여는 ‘한국 근현대 학문의 성립과 통설의 탄생’ 학술대회에서 공개한다. 학술대회에서는 이 밖에도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방법론적 기원’(도면회 대전대 교수) 등 4편을 발표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강신재 소설가#백철 평론가#여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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