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에 초연할 사람 없다” 댓글과 사투 벌이는 풍경들[광화문에서/김유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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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모든 사람이 마이크를 쥐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시대다. 디지털 미디어 확산으로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의견을 올리고 포털이나 언론사 사이트에 가서 댓글을 단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팔로어가 적으면 목소리가 묻힐 가능성이 크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댓글은 때에 따라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거나 여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댓글이 선한 의도에서 쓰이는 건 아니어서 욕설과 비방, 혐오 표현이 넘치는 ‘감정의 배설구’가 되기도 한다. 온라인 화면으로는 제목과 기사 첫 머리 몇 줄을 읽은 뒤 바로 댓글로 넘어가는 ‘Z자형 읽기’를 하는 특성상 본문을 제대로 읽지 않거나 제목만 읽고 즉각 반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분노 사회의 모습이 녹아 있을 때도 있다.

영국 가디언이 자사 기사에 달린 댓글 70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악플을 가장 많이 받은 고정 필진 10명 중 8명이 여성, 나머지 2명이 흑인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에서 댓글에 고통받다가 목숨을 끊은 연예인 중 여성이 더 많다는 사실과도 무관치 않다. 가디언 여성 필진인 제시카 벌렌티는 “악플을 받는다는 건 출근할 때 나를 향해 욕을 퍼붓는 사람 100명을 뚫고 걷는 것처럼 끔찍하다”고 말했다. 결국 가디언은 여성과 인종 관련 기사에 한해 댓글창을 닫기로 했다.

악플 부작용이 나타나는 건 만국 공통인지 해외 뉴스 유통 채널이나 플랫폼들은 일제히 악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세계 최대 검색 포털인 구글은 순수하게 검색 기능만 제공하고 사이트 내에 댓글을 담지 않아 악플 책임에서 영리하게 비켜 나갔다. 대신 구글 모(母)회사인 알파벳 산하 직소(Jigsaw)는 각 언론사들이 악플을 가려낼 수 있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모두 자체 검토를 마친 댓글만 올리는데, 두 회사 모두 직소 AI를 바탕으로 악플을 관리한다. 기존 방대한 댓글로 자사 기준을 머신러닝(기계학습)시킨 AI가 댓글 게시 여부를 판단해 준다. 인신공격이나 외설·음란한 내용, 비속어, 분노가 담긴 댓글은 모두 단호하게 삭제된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칼럼과 주요 기사 등 전체 기사의 10%에 한해 딱 24시간 동안 댓글창을 운영한다. “댓글창을 계속 열어두면 좋겠지만 모두 관리하기 힘들다”며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바에는) 댓글창을 닫아서 얻는 효과가 더 크다”고 강조한다.

CNN과 로이터통신 BBC 등은 아예 전체 댓글창을 닫고 게시판이나 소셜미디어로 독자 의견을 받고 있다. 극히 일부 방문자만 댓글을 달아 댓글의 대표성이 떨어지거나 댓글이 온라인 여론을 왜곡한다는 이유다.

한국처럼 포털에 뉴스가 집중되는 일본은 일찍이 이런 고민을 시작했다. 2002년 ‘프로바이더(인터넷 제공자) 책임 제한법’을 만들어 악플에 대한 명예훼손 책임을 포털이 지게 했다. 또 포털은 피해자가 요청하면 악플을 삭제하고 악플 작성자 정보까지 제공하도록 했다. 댓글창은 독자 참여와 다양한 의견 개진을 이끌어내 숙의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등의 기능이 있다지만, 익명을 무기 삼아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공격하는 댓글은 저열하고 비열하다. 악플에 초연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악플#소셜미디어#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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