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지언 김상조 [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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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의 폭풍 우려되는 경제 상황, 경제팀 팀워크 이뤄 헤쳐 나가야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경제민주화 정책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닌 ‘만만디 전략’이 필요하다.”

김상조 신임 대통령정책실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개혁에는 한꺼번에 확 바꾸는 빅뱅식 전략이 있고 차근차근 풀어가는 만만디 전략이 있는데 장기적 성과로 보면 만만디 전략이 더 낫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진보진영에서 ‘근본적인 재벌 개혁은 안 하고 일감 몰아주기 같은 행태만 개혁한다’고 비난하자 한 말이다.

김 실장은 보수진영에서는 ‘재벌 저격수’라고 비난받고 진보진영으로부터는 “변심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기업인들 중에서는 그에 대해 “겉으로는 기업들의 목소리도 많이 듣겠다고 하는데 속은 안 변한 것 같고 정체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원래 잘 모르면 실제보다 과장되게 생각하거나 막연하게 두려워하는 법이다. 이 정부 책임자들이 좀 더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현장과 소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변 사람들은 김 실장에 대해 책임감이 강하고 추진력도 있다고 말한다. 너무 성실하고 꼼꼼해서 아랫사람에게 적절히 위임하기보다 본인이 직접 다 챙길까 봐 걱정할 정도다. 사실 복지부동(伏地不動)한 늘공(직업 공무원)들을 포함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이 정부에서 “기다려 달라”고 진보진영을 설득하고, 언론과 기업에도 나서서 정부 정책을 설명한 사람은 김 실장이 거의 유일했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지난해 ‘신동아’ 인터뷰에서 “김상조는 30대 재벌의 속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데다 경제이론에도 밝아서 합리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소액주주운동을 하던 2004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경영진과 충돌했던 그는 2013년에는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 강연자로 초청되기도 했다.

김 실장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꼽는다. 알다시피 케인스는 1930년대 세계 경제가 깊은 불황에 빠지고 사람들의 삶이 피폐했을 때 정부가 공공지출을 통해 수요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뉴딜정책을 펴는 이론적 바탕이 됐다.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자들이 “그냥 놔두면 장기적으로 경제는 저절로 회복된다”고 할 때 케인스는 “장기적으로 사람은 모두 죽는다”면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소득주도성장 등 3대 과제를 내세웠지만 김 실장이나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케인스주의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인 2017년 대한상의 초청 강연에서 “경제학의 과제는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정치의 과제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수행하는 것”이라는 케인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저 문재인의 생각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 실장의 전공은 금융 및 거시경제다. 도시공학을 전공한 김수현 전 실장이나 경영학 전공인 장하성 주중국 대사보다 경제참모로서 더 적임인 셈이다. 그러나 케인스주의를 지향하는 것과 현재 한국 현실에 맞는 케인스주의 정책을 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일자리와 소득증대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고 있는 마당에 미중 갈등과 브렉시트로 인해 향후 대내외 경제에 어떤 풍랑이 닥칠지 모른다. 근본적으로는 주력 산업들의 경쟁력이 추락하고 출산율마저 떨어져 성장잠재력이 급락하는 중이다.

지금 경제현실은 어느 한 명의 장관이나 하나의 부처에서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만큼 팀워크가 절실하다. 큰 그림을 놓치지 말되, 한꺼번에 다 바꾸려 서두르기보다 작은 것이라도 확실하게 바꾼다는 만만디 정신을 살리기 바란다. 정부가 성공해야 민생이 편안하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김상조#재벌#거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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