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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조끼가 휩쓸고 간 샹젤리제 거리 르포 [동정민 특파원의 파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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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조끼가 휩쓸고 간 샹젤리제 거리 르포 [동정민 특파원의 파리 이야기]

파리=동정민특파원 입력 2019-03-19 16:22수정 2019-03-1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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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한 사건이죠. 그래도 저는 운이 좋았네요.”

18일 오후 프랑스 파리 최대 번화가 샹제리제 거리, 조흐주 5가 건너편에 새카맣게 재만 남은 가판대를 바라보는 사뮈 씨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뮈 씨는 이 곳에서 20년 째 가판대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 노란조끼 시위가 샹젤리제 거리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뉴스를 통해 거리가 불타고 있다는 소식에 발만 동동 구르다 저녁에 나와 보니 가판대의 창문과 천정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래도 그는 이 거리에서 가장 운 좋은 가판대 운영자다. 개선문에서 샹젤리제 로터리까지 늘어선 가판대 10곳 가운데 불에 타지 않은 두 곳 중 한 곳이다.

“그들은 제 가게도 거의 전부 부셨어요. 수리를 했고 일단 제 돈으로 냈습니다. 보험회사에 서류를 냈는데 언제 얼마나 보상해 줄지는 모르죠. 그래도 불에 타지 않았으니 운이 좋았죠.”

샤뮈 씨 가판대와 불과 5미터 떨어진 길 건너편 전소된 가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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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명품 가게와 대비되는 불탄 가판대

처음엔 영업을 해야 하니 인터뷰를 얼른 마치자고 했던 사뮈 씨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우리는 노란조끼가 비판하는 부르주아도 아닙니다. 그저 당신처럼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저희 가게를 다 부셨습니다. 왜 그랬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저 앞 가게를 보세요. 제 친구는 모든 돈과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삶이 절박해서 거리로 나오는 노란조끼 시위대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 16일 샹젤리제 거리를 쑥대밭으로 만든 노란조끼는 일반 시위대가 아니라 폭력주의 선동 집단 1500여 명의 소행으로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들 중 일부는 불타는 가판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불탄 지 사흘이 지났지만 전소한 가판대에서는 아직도 그을린 재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샹젤리제 거리에 불탄 또 다른 가판대. 개선문에서 샹젤리제 로터리까지 늘어선 가판대 10곳 중 8곳이 이렇게 불탔다.

가게가 모두 불탄 가판대 운영자 조세 루소는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나는 고작 한달에 900유로(110만 원) 버는 영세업자”라며 “끝을 모르는 파괴주의자들”이라고 시위대를 비난했다. 역시 운영하던 가판대가 전소한 미셀은 “그들은 재미로 불을 지르고 있다”며 “나는 내 가판대가 불타고 있을 때 그들이 팔짱을 끼고 있고 행복해하는 걸 보았다”고 분노했다.

거리의 작은 공간에서 신문과 음료수, 작은 기념품을 파는 가판대(키오스크)는 프랑스 시민들이 거리에서 세상과 가장 자주 접하는 창구다. 영세업자의 상징이기도 한 그들이 노란조끼 폭력 시위대에 생활 터전을 잃자 그들에 대한 동정과 시위대에 분노를 쏟아내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거리를 지나다 전소한 가판대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있던 파리 시민 듀하트 씨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새벽 4시부터 나와 신문을 진열해서 파는 최저임금자들입니다. 보험회사가 보상을 일부 해준다 해도 이렇게 불탄 뒤 오랫동안 영업을 못하는 손실은 또 어떡할 것입니까. 여기 바로 앞에 불탄 유명 식당 ‘르 푸케’에서 일하던 열명이 넘는 종업원들 일자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굉장히 슬픕니다. 파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이런 방식의 시위는 반드시 멈춰야 합니다.”

한 영국 언론인은 전소된 가판대 주인들을 도와주자는 온라인 펀드를 열기도 했다. 이 펀드는 개설 하루만에 98명이 참가해 3685유로(약 475만 원)가 모였다.

19일 샹젤리제 거리에는 오가는 관광객들은 많았지만 상점은 전후 폐허에서 복구를 하는 분위기였다.

전소한 롱샴 매장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오른쪽에 철골을 드러내고 있는 부서진 벽이 그 날의 긴박함을 보여주는 듯 하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대선 승리일 축하 만찬을 열기도 했던 유명 레스토랑 ‘르 푸케’를 비롯해 롱샴, 라코스테 등 문을 열지 못한 상점들이 즐비했다. 모든 유리창에 금이 간 의류·신발 브랜드 레페토는 유리창을 새로 맞추기 위해 한창 치수를 재고 있었다. 유리창이 산산조각난 레스토랑 도빌은 임시방편으로 비닐로 창문을 막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파리 상점 연합은 지난 주말 샹젤리제 가게 91곳이 파손됐다고 전했다.

부서진 유리창을 복구하기 위해 자로 유리 치수를 재고 있는 레페토 가게. 노란조끼는 1947년 레페토가 설립됐다는 광고판을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는 내용으로 바꿔 놓았다.

18일 보험연합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주 토요일 18차 집회 직전까지 17번의 노란조끼 시위대의 공격으로 부서진 상점이 피해 금액으로 보험회사에 요구한 금액은 1억7000만 유로(약 2193억 원)에 달한다. 보험사에 청구한 건수만 1만 건에 달한다. 16일 고급 브랜드 가게들이 대거 파손되면서 이 금액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연합회는 18일 “이제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제는 토요일 샹젤리제에서 발생한 사건이 처음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폭력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샹젤리제 거리가 또다시 폭력 시위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경비 실패를 이유로 미셸 델푸시 파리 경찰청장을 경질했다. 주말 이후 “정부는 대체 뭐했느냐”는 야당의 비판이 쏟아졌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내무부 법무부 장관 등과 함께 회의를 한 뒤 “파리 샹젤리제 거리와 보르도 페-베를랑 광장, 툴루즈 카피톨 광장 등 3곳을 불특정 기간 동안 시위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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