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在獨한국인 나, 在美독일인 남편… 애틋해서 사랑이 더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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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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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사랑/울리히 벡·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지음
이재원 홍찬숙 옮김·359쪽·1만8000원·새물결

내 이름은 미미 킴. 독일에서 약사로 일하는 40대 여성입니다. 아, 고국 이름은 김춘자예요. 유학 시절에 만난 독일인 남편 페터는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어요. 장거리 결혼생활도 벌써 5년째네요. 매년 여름휴가와 크리스마스 휴가, 이렇게 두 번밖에 못 만나죠. 매일 밤 스카이프로 무료 화상통화를 하긴 하지만 페터를 만질 순 없으니 애틋해요. 친구들은 장거리 사랑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우리 사랑이 젊게 유지되는 걸요. 매일 옆에 붙어서 권태기를 겪고 생활에 필요한 몇 마디 대화만 나누며 사는 것보단 의무적 사랑의 부담을 덜고 각자의 일에 충실할 수 있거든요. 물론 스카이프에선 서로 좋은 모습만 보여주다 보니 휴가 때 만나면 환상이 산산조각 나기도 하지만….

이건 비밀인데, 요즘 저희 부부는 인도에서 대리모를 찾고 있어요. 나이 탓에 임신이 쉽지 않거든요. 그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지 마세요. 인도에선 대리모가 합법적인 유망산업이니까…. 우리로선 유럽에서 대리모를 구하는 것보다 훨씬 싸고, 인도 여자로선 큰돈을 버니 이런 걸 ‘윈윈’이라고 하죠.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의 시대에 당연한 아웃소싱으로 봐주세요.

오, 저처럼 장거리 사랑을 나누는 가족이나 연인을 날카롭게 관찰한 책이 나왔군요. 사회학계의 세계적 석학인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사회학연구소장이 에를랑겐대 사회학과 교수인 부인과 함께 썼어요. 이 사회학자 부부가 1990년에 출간한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의 속편이죠. 전작이 개인화된 현대인의 사랑법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했다면, 신간은 세계화로 지리적 이동과 이질적 문화와의 만남이 흔해진 요즘 급격히 증가하는 장거리 사랑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서라 할 수 있어요.

페터와의 화상통화를 마치고 소파에 누운 채로 책을 끝까지 탐독해버렸네요. 저자의 용어를 빌리면 저희 부부는 ‘세계가족’이에요. 서로 다른 나라에 떨어져 살거나, 함께 살더라도 서로 다른 나라 출신끼리 다문화를 이룬 가족 말이에요. 한 지붕 아래서 이성애자인 남편과 이성애자인 아내, 그리고 그들의 생물학적 자녀가 함께 사는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은 바뀌고 있다고요.

하긴 단일민족의 전형이던 한국마저 변하고 있으니까요. 저희 오빠네는 애들 영어교육 시킨다고 기러기가족이 됐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촌 남동생은 베트남 신부를 맞았어요. 얼마 전 딸을 낳은 여동생네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 아주머니가 입주해 애를 봐주는데, 타국에서 돈벌어 고향의 자식들에게 보내는 ‘초국적 모성’에 눈물이 납니다.

“지구화된 노동시장 시대에 사랑의 기본 형태는 장거리 사랑”이라는 이 사회학자 부부의 통찰이 와 닿네요. 우리는 국가와 문화,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던 경계가 붕괴돼 타자와 관계 맺는 ‘세계시민정치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겠죠. 국적 종교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좋든 싫든 우리는 그들과 소통하고 함께 일해야만 하니까요. 그러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으니까요. 이미 고립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아, 벌써 뮌헨의 레몬빛 가스등이 꺼지고 동이 트고 있어요. 대서양 건너편 페터가 더욱 그립군요.

(미미 킴은 책 내용을 바탕으로 기자가 꾸민 가상의 화자입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장거리 사랑#울리히 벡#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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