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예지가 돌아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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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야’ 신드롬 이후 첫 앨범 ‘…우리가 그려왔던’ 발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뮤직 비디오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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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집옷(집에서 입는 옷) 차림인데 (화상통화가) 괜찮을까요? 하하.”

지난달 31일 오전, 반가운 한국어가 태평양을 건넜다. 한국계 가수 겸 DJ 예지(Yaeji·이예지·27·사진)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자택에 머무는 예지와 화상전화로 인터뷰했다. 북미 최대 대중음악 축제인 ‘코첼라 페스티벌’에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연기됐다. 월드투어 일정도 불투명해졌지만 예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장보기도 주문배달식으로 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댄스와 조명에 초점을 맞춘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공연을 준비했는데 보여드리지 못해 아쉬울 뿐”이라고 했다.

‘그게 아니야/그게 아니야.’

2016년 데뷔한 예지는 이듬해 낸 싱글 ‘Drink I‘m Sippin On’에 실린 이 한국어 ‘주문(呪文)’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혁신적인 ‘하우스’ 장르의 악곡과 속삭이는 노래에 영국 BBC는 그를 ‘사운드 오브 2018’로 선정했다.

예지가 2일, 12곡을 담은 첫 앨범 ‘WHAT WE DREW 우리가 그려왔던’을 내놨다. 미국 피치포크, 영국 NME 등 유수 매체들이 2년여 만에 발표한 그의 앨범에 앞다퉈 찬사를 쏟는다.

“많은 게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뉴욕 지하철에서 휴대전화 앱으로, 또는 집에서 혼자 노트북으로 음악을 만들었죠. 작년에 제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이제 주 5일 출근해요. 함께 일하는 창작자 친구들과 회의도 하면서 일종의 (음악) 소상공인으로 살고 있어요.”

전 세계 음악 팬이 한국어 가사를 제창한 월드투어의 장관은 예지의 자신감을 키웠다. “실은 아직도 신기해요. 세계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죠.”

다만 뉴욕의 디자인회사 디자이너이자 DJ가 하루아침에 월드스타가 된 생의 반전은 그에게 “성장통을 가져왔다”고 했다.

“너무 빠른 변화를 따라잡을 시간조차 없어 무력감을 느꼈어요. 아픔을 딛고 다시 출발하는 시점에 ‘우리가 그려왔던’이란 곡을 쓴 게 신작의 시작이 됐어요.”

그는 친구 겸 창작자들로 ‘예지 팀’을 새로 꾸렸다. 이제 창작공동체는 가족처럼 단단하다. 한국 일본 미국을 오가며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성차별, 인종차별을 많이 당했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모여 서로를 보호하면서 편안하고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세이프 플레이스’를 마침내 마련했을 때 너무나 기뻤어요.”

신작에 ‘우리가 그려왔던’ 유토피아를 함께 만든 이 기쁨도 표현했다. 전체 가사 중 80% 이상이 한국어다. ‘쉽지 않지/쉬운 거라곤 없지’(WAKING UP DOWN) ‘내가 하고 싶은 거/밥 말아먹는 거’(MONEY CAN’T BUY) 같은 반복구는 ‘그게 아니야’ 만큼이나 주술적.

“유럽 투어 때는 즉석밥도, 김도 없어서 진짜로 밥 말아먹는 게 그리웠거든요. 미국 친구들은 ‘밥 말아먹는 거∼’의 음이 그냥 되게 멋있대요. 히히.”

‘우리가 그려왔던’의 첫 소절엔 한국의 부친이 휴대전화로 녹음해 보낸 허밍을 그대로 넣었다고 했다. 뮤직비디오에서 예지는 할아버지를 만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공중목욕탕, 고무줄놀이, 전통 창호무늬도 등장한다.

“한국이 그립고 생각이 많이 나요.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면 내 문화와 다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아요. 예전에는 미국 현지 친구들이 못 알아듣게 비밀 코드처럼 넣었던 한국어가 지금은 저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수단이 됐어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예지#그게 아니야#우리가 그려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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