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0년 재즈뮤지션 덱스터 고든 사망

  • 입력 2006년 4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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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미국 뉴욕의 한 재즈바.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 흑인 몇 명이 무대에 들어섰다. 콘트라베이스의 육중한 저음과 피아노의 재기 발랄한 반주, 그리고 이어지는 테너색소폰의 현란한 연주….

덱스터 고든은 그 당시 미국 재즈계에서 촉망받는 테너색소폰 주자 중 한 명이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재즈 에세이’에서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를 생각하면 들판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떡갈나무 고목이 떠오른다. 키가 크고 모자가 잘 어울리는 핸섬하고 쿨한 테너 맨. 특히 말년의 그는 마약중독의 상흔을, 그리고 국적 이탈자의 고독을 마치 나무 그림자처럼 조용하게 발치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무라카미의 말처럼 고든은 화약처럼 젊음을 불사르고 재즈의 자유분방함을 즐겼던 재즈뮤지션이었다.

1923년 2월 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고든은 어려서부터 클라리넷을 배웠을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는 알토색소폰과 테너색소폰을 배우면서 재즈에 빠져든다. 17세 때 라이어넬 햄프턴 밴드에 가입해 다양한 연주기법을 배운 뒤 1944년 루이 암스트롱 악단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뉴욕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한다.

1947년에는 비밥(bebop·1940년대 미국 뉴욕에서 다채로운 변화의 리듬과 멜로디를 구사하는 모던재즈) 스타일의 앨범 ‘더 체이스(The Chase)’를 발표해 재즈 팬에게 큰 인기를 얻는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친다. 마약에 빠져들면서 1950년대에 거의 활동을 하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1960년대 들어 고든은 재기했다. 1961년 재즈전문 음반사인 ‘블루 노트’와 전속 계약을 하고 ‘두잉 올 라이트(Doin′ All Right)’, ‘고(Go)’ 등을 발표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는 1962년 처음으로 유럽 투어 공연을 한 뒤 덴마크 코펜하겐의 재즈 클럽 ‘카페 몽마르트르’에서 활동했다. ‘아워 맨 인 파리(Our Man in Paris)’ 음반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고든은 마약의 후유증으로 종종 활동을 중단했고 결국 1990년 4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비록 말년의 고든은 눈에 띄는 활동이 없었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재즈 팬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그가 1962년 발표한 ‘고’ 앨범의 ‘치즈 케이크(Cheese cake)’는 리듬감 넘치는 테너색소폰 연주가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치즈 케이크 같은 달콤함을 맛보며 잠시나마 힘든 세상사를 잊어보자는 듯이….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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