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병원장 하다 출가한 청봉스님…“물욕 버리니 만사형통”

  • 입력 2004년 1월 27일 18시 55분


코멘트
병원장으로 부와 명예를 누리다 89년 출가한 청봉 스님은 “결국 모든 병의 근원은 마음에 있더라”고 말했다. -강병기기자
병원장으로 부와 명예를 누리다 89년 출가한 청봉 스님은 “결국 모든 병의 근원은 마음에 있더라”고 말했다. -강병기기자
최근 모 TV의 사람 찾아주기 프로그램에서 몇 년 전 생계가 어려운 환자의 병원비 수백만원을 받지 않았던 병원장을 수소문해 보니 스님이 돼 있더라는 사연이 알려져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청봉(청峯·속명 김용원·63) 스님이 그 주인공.

그는 1989년까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종합병원인 동아병원을 운영하며 부와 명예를 쌓았다. 재소자를 위한 강연회와 무의촌 진료 등 사회활동에도 열심이던 그가 인생을 바꾼 전기는 88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가 낙마(落馬)한 일.

“의사로 시비 없이 살았으나 정치는 다르더군요. 거짓말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죠. 선거 직후 측근들이 등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그는 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고, 89년 속세를 떠나 평소 친분이 있던 절을 돌아다녔다. 그 뒤 충북 단양 인근 한 야산의 바위굴에서 5년간 수행했다고 한다. 요즘은 경기 양평의 서림사와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불심정사를 오가며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청봉 스님이 불교와 인연을 맺은 건 25년 전 우연히 충남 예산 수덕사의 초대 방장이던 혜암(慧庵) 선사를 만나 불법을 배우면서부터.

“혜암 스님은 입적할 무렵 ‘집이 허물어진다. 몸을 벗을 때가 됐다’고 하시더군요. 좌탈입망(坐脫立亡)한 그에게서 무욕과 무소유를 배웠죠.”

그러나 그가 갑자기 손을 놓은 병원은 3년 만에 문을 닫았고, 가족은 생계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지금도 가족에게 큰 짐을 지게 한 것이 가슴 아프다는 청봉 스님은 최근 들어 10여년 만에 가족과 다시 연락하고 있다. 큰아들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귀국했고, 둘째는 영화 ‘동승’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배우가 됐다.

청봉 스님은 여생 동안 팔만대장경에서 부처의 어록을 추려 기독교의 성경처럼 알기 쉽게 정리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속세에서는 가진 것을 지키고 늘리려는 욕심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채울 게 없으니 불만도 사라졌습니다. 속세에선 육신의 병을, 탈속해서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바로잡습니다▼

- 1월 28일자 A20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