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 장기화땐 판매망 붕괴… 동반진출 부품업체도 줄도산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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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中공장 가동중단]현대차, ‘글로벌 빅5’ 경쟁력 흔들

허베이성 창저우시 ‘창저우경제개발구’의 현대차 4공장 생산라인. 현대자동차 제공
허베이성 창저우시 ‘창저우경제개발구’의 현대차 4공장 생산라인.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기아자동차의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현대·기아차를 세계 5위의 글로벌 자동차업체로 견인했던 중국에서 현대차의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된 것이다. 향후 충칭(重慶) 5공장이 가동되면 상용차를 합한 현대·기아차의 중국 내 전체 생산능력은 연간 270만 대에 이른다. 수조 원을 들여 만들어 놓은 생산시설이 자칫 골칫거리가 될 상황에 처한 셈이다.

29일 자동차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중국 법인인 베이징현대와 둥펑위에다기아는 올해 2분기(4∼6월) 5000억 원에 이르는 적자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중국 정부를 의식해 현지 인력의 임금 삭감이나 구조조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모두 2만6000여 명에 이른다.

현대차의 중국 상용차 합자회사인 쓰촨현대 역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쓰촨현대는 현대차와 중국 상용차 전문회사인 현대차가 난징기차(南京汽車)와 협력해 설립했다. 쓰촨(四川)성에서 연간 16만 대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쓰촨현대도 최근 자본잠식에 빠지면서 각종 비용 집행을 줄이고, 베이징현대나 둥펑위에다기아와 마찬가지로 국내 일부 협력사에 대한 대금결제도 지연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사드 여파로 판매량이 급감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중국 자동차시장이 변화하면서 경쟁력이 약화된 것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현지 베이징(北京) 소식통에 따르면 베이징시가 스모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량 번호판 구입 기준을 엄격하게 하면서 베이징 시민들의 차량 구입이 예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 “일생에 한 번 차를 살 거라면 현대차보다 독일차를 사겠다”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당초 현대·기아차는 중국 저가시장은 토종업체가,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가성비 시장’은 현대·기아차가, 프리미엄 시장은 일본·독일차가 차지한다는 3각 구도를 전제로 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토종업체들의 저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품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현대·기아차의 입지가 크게 악화됐다. 토종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2013년 15.7%에서 2017년 상반기 25%대까지 급증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중국 토종업체를 피해 단기간에 프리미엄 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데다 지금은 기존 판매망까지 붕괴되고 있어 사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우려했다.

베이징현대는 최근까지 중국 및 외국계 부품 협력사의 대금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부품 협력사는 사드 위기를 넘길 때까지 일시적인 고통 분담에 대한 양해를 구할 수 있지만 중국 및 외국계의 경우는 그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번에 부품 공급을 중단한 베이징잉루이제는 매출의 68%가 베이징현대에서 발생한다. 적지 않은 비중이지만 납품대금을 받지 못하면서까지 부품을 공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다른 공급처를 찾아 생존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 진출한 145개 국내 부품업체는 가동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2분기 실적 역시 급격히 악화된 상태다. 인력감축이나 비용절감 등 자구책을 마련해 대응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사실상 ‘버티기’를 하고 있는 상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 업체들은 사실상 90% 이상을 현대·기아차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어려워도 부품 공급 중단에 나서지 못하고 버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베이징현대나 둥펑위에다기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면 동반 진출한 업체까지 줄도산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는 구조라는 의미다.

재계는 현대차의 중국 공장 가동 중단이 국내 기업들의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며 우려하고 있다. 중국 미국 등 대외시장의 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통상임금 소송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국내 경영 여건도 어려움에 빠진 탓이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정체되고 있어 산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서동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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