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 당권파 vs 비당권파 전면전]“이석기 배후엔 민혁당이?…설마 北지령을?”

  • Array
  • 입력 2012년 5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北지령 받았는지 확인 필요”… 당국, 하씨 소재파악 나서
“이석기도 재건 가담 추정… 통진당 경기동부연합 장악”

하영옥 씨
하영옥 씨
정보당국은 현재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조직이 재건된 것으로 보고 민혁당 세력의 핵심인 하영옥 씨의 행방을 찾고 있는 것으로 8일 알려졌다.

한 정부소식통에 따르면 당국은 NL계(민족해방계열) 주체사상파 출신 인사들의 증언과 정황을 종합한 결과 1997년 해체된 민혁당 조직이 재건됐으며 그 주도세력이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핵심인 경기동부연합을 장악했다고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 씨는 주사파의 대부인 김영환 씨와 함께 1992년 지하조직인 민혁당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나 당국은 하 씨를 비롯한 민혁당 관련자들이 민혁당 사건으로 이미 형을 살았기 때문에 조직 재건 자체만으로 사법 처리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당국은 하 씨가 재건에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1990년대처럼 북한의 지령을 받는 등 북한과의 연계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하 씨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 씨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나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학원 강사를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하 씨는 자신을 수학강사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당국은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의 이석기 통진당 비례대표 당선자도 민혁당 조직 재건에 가담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그가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몸통 뒤에 또 몸통說… 당권파, 꼬리무는 숨은 실세 의혹 ▼

3월 출판된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의 책 ‘진보의 그늘’에는 “하 씨는 민혁당을 주도한 김영환 씨가 1997년 민혁당을 해산하자 이에 반발해 경기남부위원회와 영남위원회 등 당 조직을 관리하며 지하당을 유지하려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한 대표는 1980, 90년대 학생·노동운동을 하다 1990년대 중반에 전향했다.

한 대표에 따르면 하 씨는 198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뒤 1989년 ‘반제청년동맹준비위원회’를 결성했으며 1990년 5월 28일 도봉산에서 김영환 씨와 함께 조선노동당 입당식을 치렀다. 당시 하 씨는 “조선노동당에 입당해 매우 영광스럽고 모든 역량을 다해 당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것임을 맹세한다”는 결의를 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관악산 2호’로 불렸다. 1998년 12월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침몰한 북한 반잠수정에서 북한의 직파 간첩과 하 씨가 연관된 물증이 나와 민혁당사건의 윤곽이 수사당국에 포착됐다. 하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999년 구속돼 8년형을 선고받았고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채널A 영상]김선동 의원 “투표용지 관리가 부실해서…풀이 다시 붙었다”

당권파만의 공청회… 김재연 위로하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진상조사 보고서 검증 공청회’에서 이정희 공동대표가 눈물을 닦고 있는 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를 위로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당권파만의 공청회… 김재연 위로하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진상조사 보고서 검증 공청회’에서 이정희 공동대표가 눈물을 닦고 있는 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를 위로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민혁당에 정통한 한 인사는 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하 씨가 이 당선자를 비롯한 민혁당 세력의 배후이자 최고 수뇌부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 씨가 출소 후에도 전향하지 않았고 이념적 성격이 분명한 지하조직의 생리로 볼 때 아직도 관련 활동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이 당선자가 통진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면서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온 것도 하 씨와 상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3월 한기홍 대표는 “이석기 후보는 민혁당이 해체된 후에도 하 씨와 함께 조직 재건에 나섰다”며 “당시 이 후보가 민혁당을 이탈한 후배를 만나 재가입을 권유한 얘기도 판결문에 나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당선자는 1999년 민혁당사건 발표 이후 잠적해 3년간 수배생활을 하다 2002년 검거됐으며 5개월 만인 2003년 8월 노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하 씨는 2003년 5월 이 당선자의 석방을 요구하는 도보순례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따라서 하 씨와 이 당선자는 석방 후에도 꾸준히 관계를 유지해 왔을 것으로 보인다. 민혁당사건 당시 하 씨와 이 당선자, 이의엽 부산지역위원장(현재 통진당 정책위의장) 등 핵심 간부들의 존재만 드러났고 나머지 당 조직원들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 씨를 중심으로 이들 조직원이 재건된 민혁당 조직에 다시 합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통진당 일각에선 “당권파의 경기동부연합과 민혁당 출신들이 지하당 시절의 이념적 폐쇄성,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같은 구태를 버리지 못한 탓에 ‘국민보다 당원이 우선’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

북한에서 직접 지령을 받은 종북(從北) 지하당. 서울대 법대생이던 김영환 씨가 1991년 북한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돌아온 후 1992년 위원장을 맡아 창당했다. 북한 현실에 회의를 품은 김 씨는 1997년 민혁당을 해체했지만 하영옥 씨 등은 반발해 민혁당 재건에 나섰다. 1998년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침몰한 북한 반잠수정에서 민혁당 관련 문건들이 발견돼 이듬해 김 씨 등 수뇌부가 체포됐다. 2000년 대법원이 반국가단체로 판결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통합진보당#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민족민주혁명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