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대한민국’ 세계 석학에게 듣는다]<2>美금융위기 정확하게 예측한 케네스 로고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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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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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日과 달리 상승하는 나라… 올해 5% 성장 낙관”

《“한국 사람들은 열정적이었습니다. 서울에 몇 차례밖에 방문하지 않았지만 내가 가본 다른 나라들하고는 아주 달라요. 서울은 인상적이고 역동적인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에너지를 서울에서 느꼈습니다. 일본이 추락하는 나라인 데 반해 한국은 상승하는 나라입니다.” 미국의 금융위기를 정확하게 진단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의 케네스 로고프 미 하버드대 교수(58·경제학)는 한국의 인상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한국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미국처럼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은 한국 국민들의 역동성에 힘입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는 2011년 한국경제에 대해서도 낙관했다. 부채가 많지만 금리가 낮기 때문에 경제성장은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경제학)가 내다본 올해 미국 경제의 앞날은 어두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전망에 대해서는 “노조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의회도 비준하게 될 것”이라며 낙관했다. 케임브리지(매사추세츠 주)=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경제학)가 내다본 올해 미국 경제의 앞날은 어두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전망에 대해서는 “노조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의회도 비준하게 될 것”이라며 낙관했다. 케임브리지(매사추세츠 주)=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난해 12월 20일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시에 있는 하버드대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로고프 교수는 60세를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대학생 같이 캐주얼한 복장에 배낭을 메고 출근했다. 로고프 교수는 27세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48세에 IMF 수석이코노미스트가 된 금융석학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미국경제, 한국경제의 앞날을 1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감세연장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됐다.

“미국 재정적자가 아주 걱정된다. 소득분배 문제도 우려된다. 감세연장법은 국가재정을 안정시키고 소득분배를 향상시키는 데 반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큰 정부를 지향했지만 감세연장법은 큰 정부 정책의 후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2년 동안 건강보험개혁법과 반(反)기업정책 등 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했다. 하지만 감세연장법은 오바마 대통령의 큰 정부 정책에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경기부양 성격을 갖고 있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

―부자 감세(減稅)에도 동의하나.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그런 정책을 쓰는 것을 지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반기업적 태도로 악명이 높다. 사람들은 세금 때문에 투자하기를 꺼린다. 감세연장법은 오바마 대통령의 반기업적 태도의 후퇴를 뜻하는 것이다.”

―양적완화 정책을 놓고 논란이다. FRB가 얼마 전 6000억 달러를 시중에 풀기 시작했는데 국내에선 돈이 돌지 않고 해외로 빠진다는 지적이 있다.

“양적완화 정책이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업률을 0.5%가량 낮출 수는 있다. 하지만 FRB의 양적완화 조치는 옳은 정책이다. 일본과 같은 경기침체 시나리오를 피하려면 더 공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해외로 돈이 빠진다는 지적은 너무 순진한 분석이다. 신흥개도국 시장이 활황을 보이고 있어서 돈이 몰리는 것이다. 시장에 지나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연준의 발표 태도가 문제였다.”

―위안화 절상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 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수출을 통한 일자리를 늘리려는 미국이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펴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미국은 과도한 차입을 중단해야 한다. 또 중국은 수출을 통한 성장전략을 멈춰야 한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할 경우 그가 보다 강한 보호무역주의자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고 실업률이 고공행진하며 양적완화에 기댄 통화정책이 더는 작동하지 않을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교역을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다.”

―2012년에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말인가.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고, 여론조사 결과가 좋지 않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려 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세계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큰 재앙이라고 여기므로 아주 강하게 나설 것이다. 2012년은 불확실성이 가득한 해가 될 것이다.”

―올해 미국경제를 어떻게 보나.

“실업률은 10%까지 뛰어 오를 것이다. 경제성장률은 3.5% 정도 예상된다. 인플레이션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국이 경기침체에서 막 벗어나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리 좋은 수치는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단기 경기부양책을 놓고 게임을 벌이려 해서는 안 된다. 규제를 없애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며 생산성을 유지하고 교육과 기반시설 투자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걱정되는 것은 당장 1년이 나쁜 것이 아니라 앞으로 10년간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장기적인 그림을 걱정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개혁을 평가한다면….

“위기의 근본이었던 양대 주택담보대출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다루지 않았다. 중요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금융개혁엔 도움이 됐다. 유럽은행은 돈이 없는데도 돈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유럽은행은 자금이 충분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돈이 없었다. 새로운 규제는 유럽은행에 많은 자금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유럽은행에 돈을 빌려주겠나. 똑같은 문제가 미국 은행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가장 빨리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 성장이 빠른 만큼 후유증은 없을까.

“조심스럽지만 한국경제에 낙관적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과도한 차입 경제로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미국이 경험한 정도의 과도한 위기를 경험하지는 않았다. 그리스나 아이슬란드, 미국, 영국이 겪은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를 겪지 않았다. 한국이 2011년에 5%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은 합리적인 기대치라고 본다. 중국 경제가 변수가 될 것이지만 한국의 경제 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데는 낙관한다. 부채는 많지만 이자율이 낮아서 금융비용이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한국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어떤 게 필요하나.

국은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을 갖고 있다. 대부분 대출이 은행을 통해 이뤄진다. 이런 구조는 대기업에 유리하지만 중견기업을 육성하는 데는 불리하다. 벤처캐피털이 아직도 한국에서는 아주 원시적인 단계다. 한국인은 아주 창의적이고 혁신적이기 때문에 더 다양한 금융부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벤처캐피털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키울 것이고 한국의 장래에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한국은 고도로 훈련되고 창의적인 인적 자산을 많이 갖고 있다. 금융규제를 풀어 미국처럼 다양한 금융부문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중국 경제가 언제까지 연 10%의 고도성장을 구가할 것이라고 보는가.

“중국이 지금 좋은 세기를 누리고 있지만 해마다 10% 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내 책에서 밝혔듯이, 중국은 경기침체를 겪지 않고 금융위기를 당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중국이 더 커지고 부유해질수록 경기 사이클에 노출되는 위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동안 중국이 뚜렷한 경기침체를 겪지 않고 장기간 고성장을 이룬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한번 경기침체를 맞게 되면 장기간에 걸쳐 아주 잔혹한 침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나라도 비즈니스 사이클을 극복한 적이 없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이 웃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미국의 암울한 경기 상황을 반영하는 것인가.

“재미있는 관찰이다. 버냉키 의장은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일하고 있다. 버냉키 의장의 어깨를 많은 짐이 누르고 있어 편안한 날이 없을 것이다. 버냉키 의장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지만 그는 편안하게 웃는 사람이다. 버냉키 의장의 표정을 통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미국의 과도한 부채를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10여 년 계속 이어지는 문제다. 미국은 계속해서 다른 나라로부터 차입만 할 수 없다. 미국이 포르투갈이나 그리스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스페인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미국에 높은 이자를 물리지 않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미국이 부채가 많다는 사실을 알릴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채문제를 관리하지 않으면 벌 받게 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세금을 더 깎아주고 의료혜택을 더욱 늘리겠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미국은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간선거에 지고 나서 경제정책을 바꾼 것 같다.

“임기 초반 2년 동안 지나치게 반기업적인 발언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것이 이기는 전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제 기업인들과 문을 열고 많이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중간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고함을 치고 징징거리지만 결과를 봐라. 선거에 지지 않았나.”

―오바마 대통령이 갖가지 개혁정책을 추진하고도 중간선거에서 졌는데….

“건강보험개혁법은 ‘재앙’이었다. 사람들은 비용이 증가할 것을 걱정하고 세금이 하늘로 치솟을 것을 우려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건강보험 혜택이 줄어들 것으로 여겼다. 건강보험 비용을 어떻게 통제할지 오바마 대통령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참모들을 어떻게 평가하나.

“최상의 팀이다. 하지만 경제를 낙관하는 바람에 오바마 대통령에게 결국 상처를 입히게 됐다.

끝으로 양국 간 현안이 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의회 비준 전망에 대해 물어봤다.

“오바마 대통령이 콜롬비아와 FTA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이를 통과시키지 못한 것은 경악할 일이다. 과거로 후퇴하는 보호무역주의를 아주 걱정한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좋은 친구인데도 아직도 이런 상황인 것은 정말 파괴적인 일이다. 결국 의회는 한미 FTA를 비준할 것이다. 노조에서도 지지하고 있다. 민주당도 지지할 것이다. 미국 수출시장의 문을 넓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은 아주 중요하다.”

케임브리지(매사추세츠 주)=

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케네스 로고프::

△1953년 미국 뉴욕 주 로체스터 출생
△1975년 예일대 경제학 학사 및 석사
△1980년 MIT 경제학 박사
△1980∼1983년 FRB 이코노미스트
△1985∼88년 위스콘신 매디슨대 경제 학 조교수
△1989∼91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 제학 교수
△1992∼94년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
△2001∼2003년 IMF 수석이코노미스트
△1999년∼현재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주요 저서: 국제경제학 핸드북(1995년), 국제거시경제 근간(1996년), 국제거시경 제 워크북(1998년), 이번에는 다르다(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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