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동엽]소프트파워로 지배하라

  • 입력 2009년 6월 8일 02시 49분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아이리버에서 먼저 상용화했던 MP3플레이어를 후발 주자인 애플이 아이팟으로 가볍게 추월한 비결은 무엇일까. 대학원생 두 명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시작한 구글은 어떻게 단기간에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가지게 되었을까. 답은 모두 끊임없이 새로운 메타 콘셉트(meta concept)를 창조해낼 수 있는 상상력의 힘, 즉 소프트파워에 있다.

구글과 애플의 메타 콘셉트

21세기는 소프트파워에 강한 기업이 지배한다. 소프트파워는 서로 다른 다양한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상위 개념인 메타 콘셉트를 창조하는 것이다. 즉, 끊임없는 창조와 혁신이 게임의 룰인 21세기 창조경제 시대에는 하드웨어적 기술력이나 경영 시스템이 아니라 메타 콘셉트나 창조적 상상력 같은 소프트파워가 가장 중요한 경쟁요소인 것이다.

소프트파워는 소프트웨어 경쟁력과는 다른 개념이다. 워드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컴퓨터 기기와 같은 하드웨어를 넘어선 것은 이미 1980년대다. 1980, 90년대의 소프트웨어 경쟁에서 IBM 등 기존 정보기술(IT) 강자들을 제치고 글로벌 시장을 지배한 것이 마이크로소프트다. 그러나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글로벌 지배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프트웨어 경쟁력보다 상위 개념인 소프트파워로 무장한 구글과 애플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구글이나 애플 등이 시도한 것은 특정 소프트웨어에서 혁신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상상력으로 그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메타 콘셉트를 제시하고 이를 중심으로 기존 사업 분야나 상품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을 융·복합화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구글이 추구하는 것은 최고의 인터넷 검색엔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PC가 필요 없이 모든 프로그램과 기능들이 웹에 올려져 공유되는 완전히 새로운 미래 세상이며, 이 엄청난 메타 콘셉트가 구체적 수익모델 없이도 구글의 기업 가치가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이유다. 애플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기업이 MP3플레이어를 기존의 음향재생기기 산업의 경계 안에서 신상품으로만 인식했던 반면 애플은 아이팟을 음향재생기기 산업의 경계를 넘어 음원산업, 동영상산업, 콘텐츠산업, 네트워크산업 등 서로 다른 다양한 산업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새로운 메타 콘셉트로 제시했던 것이다.

소프트파워가 지배하는 21세기 창조경제 시대가 도래했지만 우리 기업들은 아직 개별 사업 분야나 상품시장에서 경쟁력을 추구하는 20세기적 패러다임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개별 사업 분야나 상품, 기술에서의 경쟁력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 정상급이다. 애플의 아이팟에 들어가는 메모리, 프로세서,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등의 약 70∼80%는 우리나라 삼성전자에서 제공하고 있다. 즉, 아이팟의 기술 경쟁력은 애플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가지고 있으나 수익의 대부분은 애플이 차지하고 있는 억울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질적인 다양한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메타 콘셉트를 제공하는 창조적 상상력, 즉 애플의 소프트파워에 있는 것이다.

창조-혁신, 새로운 게임의 룰

삼성전자는 창조경영을 강조하면서 20여 개의 사업부가 독립적으로 개별 사업 분야에서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던 사업부별 단기 성과주의 체제를 올해 초 두 개의 거대전략 단위로 통폐합했다. 삼성전자가 이런 급진적 구조개편을 시도한 것도 모두 다양한 이질적 분야를 아우르는 소프트파워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기존 경쟁우위의 방어와 유지가 아닌 끊임없는 창조와 혁신이 게임의 룰인 21세기 창조경제 시대에서 소프트파워 패러다임으로의 신속한 전환은 기업들은 물론이고 국가 전체의 존망까지도 결정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는 사실을 모든 리더가 하루빨리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