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패션]모델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 입력 2009년 6월 5일 03시 00분


《지난달 4일 미국 뉴욕 맨해튼 메트로폴리탄미술박물관에 케이트 모스, 신디 크로퍼드, 클라우디아 시퍼, 엘리자베스 헐리, 타이라 뱅크스, 지젤 번천 등 20세기를 풍미한 당대의 모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런웨이도 아닌 박물관에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메트로폴리탄미술박물관에서는 지난달 6일부터 8월 9일까지 전시회 ‘뮤즈, 모델’이 열리고 있다. 전시회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파티에서 ‘런웨이의 별’들이 한데 모일 정도로 이번 전시회에 대한 ‘패션 피플’의 관심은 뜨거웠다. 단순히 축복받은 신체를 앞세워 옷을 입는 것을 넘어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표현했던 20세기 뮤즈의 아름다운 흔적을 지상중계한다.》

60년대 말라깽이, 90년대 글래머, 지금은 중성코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 ‘뮤즈, 모델’ 전시회

○코끼리 앞에 선 뮤즈

‘뮤즈, 모델’ 전시회장 입구에는 대형 코끼리 그림을 뒤로 한 채 검은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이 서있다. 뜬금없는 코끼리의 등장이 의아하지만 사실 이 마네킹은 가장 위대한 패션사진으로 꼽히는 1950년대 모델 도비마의 사진을 다시 연출한 것이다. 도비마가 1955년 사진작가 리처드 애버던과 함께 작업한 이 사진 속에서 도비마는 전설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초기에 디자인한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서커스 코끼리 앞에 섰다.

마임 예술가와 같은 몸짓의 도비마는 1950∼60년대 가장 몸값이 높았던 모델이었다. 당시 오트 쿠튀르(맞춤복)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이 만든 옷이 단순히 입는 것을 떠나 철학을 담길 바랐다. 도비마와 같은 모델은 디자이너들의 오묘한 ‘패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제격이었다. 암호 같은 도비마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 도로시(Dorothy)의 ‘Do’와 성공(Victory)의 ‘Vi’, 엄마를 뜻하는 ‘Ma’를 조합한 것이라고 한다. 파격적인 사진과 달리 굉장히 가정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의 모델로 전해진다.

이처럼 모델은 단순한 ‘옷걸이’가 아니라 시대의 분위기와 변화를 반영하는 아이콘이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해럴 코다 메트로폴리탄미술박물관 수석큐레이터는 “시대별로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모델들이 디자이너의 영감을 구체화하는 뮤즈였다”고 말했다.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인형을 이용해서 앞으로 유행할 의상을 선보였다. 실물 크기로 제작된 인형은 하나는 겉옷을, 하나는 속옷을 입혀 전시했다. 이 인형을 지칭해 ‘리틀 레이디, 패션보디’라 불렀다.

인형에서 사람으로 대체된 것은 19세기 말부터. 당시 프랑스 파리 오트 쿠튀르 선구자였던 찰스 워드가 자신이 만든 의상을 선보이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옷을 입혔던 것이 모델의 시작이다. 이후 디자이너가 만든 의상을 ‘마느켕’이라 불리는 여성들이 의상을 입고 선보이는 일종의 패션쇼로 발전했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스타일을 뜻하는 트위기(Twiggy)란 영어단어는 1960년대 활약한 영국 출신의 패션모델 레슬리 혼비의 별명이다. 트위기는 미소년 같이 짧은 머리에 키 168cm, 몸무게 40kg에 불과한 깡마른 몸매를 내세워 미니스커트를 대중화한 인물이다. 미니스커트는 당시 여성들이 자기주장을 내기 시작했던 사회 분위기를 담은 옷이었다. 섹시하면서도 뇌쇄적인 외모의 진 슈림턴도 당당한 여성상을 표현하는 모델이었다.

50년대의 아이콘 도비마부터 패션 세계화한 슈퍼모델까지

모델은 옷걸이 아닌 시대지표

○런웨이에 선 우리 시대의 자화상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착륙한 1969년 런웨이에는 미래지향적인 패션이 등장했다. 페기 모핏은 미인은 아니지만 꿈꾸는 듯한 얼굴과 기괴한 포즈, 짙은 눈화장으로 패션계에 불어닥친 미래주의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는 전후(戰後)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를 겨냥해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좀 더 자유분방하고 전위적인 실험정신을 반영한 패션이 대세였다.

1970년대 들어서는 길게 늘어뜨린 금발 머리가 모델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미국 텍사스 출신인 제리 홀은 인디언 혈통이 섞여 큰 키와 쭉 뻗은 다리, 큰 골격으로 디자이너 할스턴의 여신 스타일 드레스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록밴드 ‘롤링 스톤스’의 리드싱어 믹 재거와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홀은 믹 재거와 이혼한 후 53세의 나이로 최근 샤넬 모델로 다시 나서기도 했다.

패션산업이 세계화되면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슈퍼모델’이다. “패션의 최신 유행어는 미니(절제주의)냐, 맥시(과대주의)냐, 스트레치(신축성이 뛰어난 직물)냐가 아니라 세계화”라고 표현한 뉴욕타임스(1992년)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90년대 패션의 주요 키워드는 스타일보다 ‘세계화’였다. 프랑스 파리로 치우쳤던 패션산업의 무게중심이 미국 뉴욕으로 옮아가면서 슈퍼모델이 런웨이를 주름잡았다.

슈퍼모델은 단순히 패션산업뿐 아니라 영화, 광고, TV 등 다양한 대중문화군에서 활약했다. 슈퍼모델이란 타이틀은 린다 에반젤리스타에 의해서 많이 알려졌다. 1988년 이브 생로랑의 향수 ‘오피엄’ 광고로 등장한 에반젤리스타는 막스마라, 베르사체, 돌체앤가바나의 모델로 활동했다. 크리스티 털링턴, 스테파니 시모어, 신디 크로퍼드, 나오미 캠벨 등 소위 ‘36-24-36’ 몸매의 소유자들이 에반젤리스타와 함께 슈퍼모델 1세대로 분류된다.

그러던 모델계에 큰 변화가 다가온 것은 1990년대 중반 장식을 최대한 절제하고 단순미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 바람이 불면서부터다. 헬무트 랭, 도나 캐런, 프라다 등으로 대표되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여신처럼 완벽한 신체조건을 가진 배우가 아니라 비쩍 마른 소녀풍에 몸에 굴곡이 없는 중성적인 스타일이었다. 케이트 모스는 말라깽이 모델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요즘 가장 사랑받는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인 마크 제이콥스는 모스에 대해 “자신의 꿈을 패션으로 바꿔놓은 모델”이라고 극찬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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