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자폐아 우리 아이 말타더니 마음 열었어요”

  • 입력 2009년 5월 5일 02시 56분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에게 재활 승마는 뇌 근육 발달과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말을 타고 있는 김경민 군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한상준 기자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에게 재활 승마는 뇌 근육 발달과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말을 타고 있는 김경민 군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한상준 기자
■ 강동구 재활승마 프로그램 가보니

《최다해 양(9)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나무를 꼭 붙잡고 있었다. “괜찮아. 가서 한 번만 타보자”라며 조교들이 타이르고 다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까지 나서서 설득해봤지만 다해는 점점 더 멀리 도망갔다. 지난달 29일 경기 하남시 미사리조정경기장에서 만난 다해는 자폐성 장애와 청각장애를 앓고 있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재활승마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몸무게가 500kg에 육박하는 말은 다해에게 무서움 그 자체였다.》

“뇌에 자극… 정서적 교감 나눠”

375명 참가 90%가 상태호전

기초생활자엔 비용 전액 지원

먼발치서 울고 있는 다해를 지켜보던 ‘찾아가는 승마교실’ 김명기 사무국장은 “다해가 지난주에도 울다가 말 한번 못 타보고 집에 갔다”면서 “지금은 저렇게 울고 있지만 분명 웃으면서 말을 타게 될 테니 두고 보라”며 빙그레 웃었다. 결국 남자 조교가 다해를 억지로 부둥켜안고 승마용 말인 ‘대장이’의 안장에 앉혔다. 있는 대로 악을 쓰며 울어대던 다해는 신기하게도 대장이가 걷기 시작하자 울음을 멈췄다. 김 사무국장은 “정신지체 아동에게 커다란 말은 처음엔 무섭게 느껴지기 마련”이라며 “하지만 직접 말을 타다 보면 정신적인 교감도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정서 치료가 된다”고 설명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미사리조정경기장에서 열리는 ‘재활승마 교육 프로그램’은 강동구가 지적·자폐성 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승마 교육을 통해 심리치료와 재활을 돕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재활 승마는 외국에서 이미 보편화된 프로그램으로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에게 큰 효과가 있다.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재활승마에 참가한 375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0%가량이 상태가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사무국장은 “말을 탈 때 다리에 힘을 주는 과정에서 뇌 근육이 발달하고 균형감각도 자연스럽게 길러진다”며 “정신지체 아동들은 말에게 직접 먹이를 주고 말을 타는 과정에서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게 된다”고 설명했다.

역시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김경민 군(12)은 지난주에 한 번 말을 타본 덕분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학교, 병원, 복지관만을 왔다 갔다 하는 경민이에게 일주일에 한 번 밖으로 나와 말을 타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다.

“경민아, 꼭 잡아. 손은 놓으면 안 돼.”

신나서 연방 박수를 쳐대는 경민이를 붙잡고 있던 조교가 다독거렸다. 장애 아동이 말을 탈 때는 강사, 줄을 잡아주는 리더, 옆에서 붙들어주는 사이드워커 2명 등 4명이 달라붙어야 한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보호자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다해의 할머니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다해가 말을 타는 장면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다해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할머니는 “말도 잘 못하는 다해가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내가 다 기쁘다”며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우리 같은 살림에 언제 말을 태워보겠느냐”고 말했다.

강동구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프로그램 수강료 전액을 지원해주고 있다. 현재 8명의 기초생활수급 장애아동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으며 앞으로 참가자를 더 확대할 방침이다. 30분간의 짧은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은 헬멧과 안전조끼를 벗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차로 향하던 다해가 갑자기 “악, 악” 하고 소리치며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 대장이에게 인사하려고?”

천천히 대장이에게 다가간 다해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대장이에게 연방 배꼽인사를 했다. “대장이 좋아? 다음 주에 또 타러 올까?” 할머니의 물음에 다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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