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오르면 경기회복 더 멀어진다”

  • 입력 2009년 4월 20일 02시 58분


■ 금융당국, 대출금리 변칙 인상 움직임에 제동

금융 당국이 대출체계 변경을 통해 사실상 금리를 올리려는 은행권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은 유동성 공급을 늘려 기업과 가계의 자금난을 덜어주려는 정부의 정책기조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의 금리 상승을 용인할 정도로 실물경제가 활발하지 않다는 점도 당국이 시장 개입이라는 부담을 무릅쓰고 은행권에 ‘자제 촉구’ 메시지를 던진 배경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들은 당국의 이 같은 의중을 파악하고 기준금리 변경 작업을 유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금리 인상, 때가 아니다”

은행들은 최근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 규모 감소로 CD금리가 더는 은행의 조달금리를 대표하지 못하게 되자 CD금리 중심으로 돼 있는 현행 대출체계를 바꾸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은행이 전체 운용자금의 절반을 CD로 조달했던 시기에는 CD금리가 오르거나 내리는 폭에 따라 은행의 조달비용도 늘거나 줄었다.

하지만 전체 은행의 자금 조달금액에서 CD가 차지하는 비중이 10% 선으로 떨어져 CD금리와 은행의 조달금리가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이게 되면서 ‘역마진’ 문제가 불거졌다. 7, 8%대의 높은 금리로 후순위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 놓고 2%대의 CD금리 기준으로 대출하면 손실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은행들은 이에 따라 전체 자금 조달액의 20%를 넘는 은행채 금리에 예금과 CD금리 등을 가중 평균해 대출 기준금리를 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금리가 오를 때는 별 말이 없다가 최근 금리가 급락하자 대출체계 변경을 거론하는 은행들의 행태에 소비자들이 공감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시중자금을 늘리고 자금 회전을 원활히 해 ‘돈맥’을 뚫어야 하는 위기상황에서 금리 상승을 촉발하는 방향으로 대출체계를 바꾸는 것은 정책의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는 게 당국의 인식이다. 금융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대출체계 변경작업은 CD금리가 오르는 시기에 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대출 금리 낮아질까

금융 당국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당국은 앞으로 대출체계를 현행대로 유지하고 가산금리를 낮추도록 하는 방식으로 금리 인하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가운데 ‘대출금리 체계 유지’는 기준금리가 오르는 것을 막아 간접적으로 금리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지금 시중은행은 2%대 중반인 CD금리에 3%대의 가산금리를 더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정한다. 만약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그대로 둔 채 대출체계를 바꿔 4%대의 새 기준금리를 도입하면 전체 대출금리는 크게 오른다. 기준금리 변경을 계기로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현재(3%대)의 절반 이하로 대폭 내리지 않는 한 대출금리는 지금보다 1%포인트가량 상승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은행 종합검사 때 가산금리가 적정하게 산정됐는지를 살펴보기로 한 것은 금리 인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신용도가 3등급인 개인이 서울 아파트를 담보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면 1% 안팎의 가산금리가 적용됐지만 1년여 만에 가산금리는 2%포인트가량 상승했다. 금감원 검사 결과 신용등급과 무관하게 가산금리가 책정된 사실이 드러나 금감원이 시정 조치를 내리면 가산금리는 지금보다 크게 낮아질 수도 있다.

○ 은행 “대출체계 전면개편 없을 것”

당국은 이 방안과 관련해 공식적으로는 “은행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은행권은 비공식 루트를 통해 금융 당국이 대출금리 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방안에 부정적이라는 점을 감지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나중에 CD금리가 상승할 때 CD금리 연동 대출상품과 함께 다른 기준금리에 연동된 대출상품을 내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은행이 일방적으로 기준금리 체계를 바꾸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선택하는 방식으로 CD금리 기준 상품의 비중을 자연스럽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대출 상품을 다양화해 CD금리 대출 판매 비중을 점차 줄이는 방향으로 마케팅 전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현행 CD금리 기준의 대출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소비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금리체계 변경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금융연구원 김자봉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CD금리뿐 아니라 은행의 예수금 금리, 금융채 금리 등 모든 종류의 조달 금리를 반영한 새로운 금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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