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현금 쓸 찬스” 올해 해외 M&A 3.7배로 급증

  • 입력 2008년 11월 20일 03시 00분


국내시장 위축에 해외서 활로 모색

제약 금융 석유화학 등 업종 안가려

#사례 1 일본 다이이치산쿄는 올해 들어 인도 최대 제약회사 란박시를 인수했다. 란박시는 금융위기와 품질관리 문제가 겹치면서 주가가 매수 당시 절반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다이이치산쿄는 개의치 않고 추가 인수합병(M&A)을 노리고 있다. 란박시 인수가 중국 인도 등 7개 신흥국의 의약품 시장이 40조 엔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2030년’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사례 2 음료 및 주류회사인 산토리는 지난달 24일 뉴질랜드의 한 대형 음료회사를 750억 엔에 사들인다고 발표했다.

산토리는 해외기업을 사들이기 위해 2000억 엔을 준비해 놓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해외기업을 사들이기 위해 벼르고 있는 기업은 제약 주류 회사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 석유화학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있다.

○ 세계 M&A 시장 주도하는 일본 기업

의료용 아크릴섬유와 아크릴수지를 주로 생산하는 석유화학업체 미쓰비시레이온은 최근 영국 회사 루사이트인터내셔널 지분 78%를 약 1500억 엔에 인수한다고 선언했다.

루사이트는 아크릴수지의 원료인 메타크릴산 메틸모노마의 세계 최대 제조업체.

미쓰비시레이온은 세계시장의 13%를 점유하고 있는 4위 기업. 미쓰비시레이온이 루사이트를 사들이면 이 회사의 점유율은 35%로 2위인 미국 회사를 2배 이상 웃도는 1위 제조업체가 된다.

올해 1∼10월 일본 기업이 해외기업을 M&A한 금액은 6조6678억 엔으로 전년 동기의 3.7배로 급증했다는 것이 M&A컨설팅업체인 레코프의 추산이다.

○ 일본이 M&A에 적극 나서는 이유

일본 기업들이 경제위기 와중에 적극적으로 M&A에 나서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일본 기업들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한 데다 최근 장기 호황으로 가공할 현금 동원력을 갖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60조 엔(약 800조 원)이 넘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 전 세계 주식시장이 침체하고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일본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 가치는 2배 이상 높아진 상태다.

또 다른 원인은 저출산 고령화 현상으로 국내시장이 위축되면서 일본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결정을 통해 성공한 사례가 있다.

일본판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1997, 1998년 아사히유리는 러시아의 유리 제조업체를 연이어 사들였다.

불황의 끝이 보이지 않는 험난한 시기에 해외사업을 확대하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투자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사히유리는 이 덕분에 유럽 매출이 2007년까지 9년간 30%가량 늘었다.

그렇다고 일본 기업들의 M&A 공세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일본 기업들은 1980년대 후반 거품경제 때도 무서운 기세로 해외기업들을 사들였으나 거품이 붕괴되면서 손실을 보고 되판 쓰라린 ‘집단기억’을 갖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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