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뒤 정신 오락가락… 치매? 섬망!

  • 입력 2008년 6월 23일 02시 57분


섬망은 초기 발견이 이뤄지면 완치될 수도 있지만 방치하면 치매를 유발하거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섬망은 초기 발견이 이뤄지면 완치될 수도 있지만 방치하면 치매를 유발하거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성수(가명·70) 씨는 집에서 목욕을 하던 중 바닥에 넘어져 엉덩이관절이 골절됐다. 병원에서 급히 수술을 받은 지 3일째 되는 날 김 씨는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가 하면 뭔가 보이는 듯 허공을 향해 손을 젓기도 했다. 김 씨의 가족은 김 씨가 혹시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지 걱정됐다. 김 씨를 진찰한 의사는 치매가 아닌 ‘섬망(섬妄)’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일부 증상이 치매와 비슷해서 노인을 모시는 가정에서는 종종 혼동을 하기도 한다.》

다른 질환의 경고등, ‘섬망’ 치료 어떻게

○ 큰 수술 받은 노인 환자에게 잘 생겨

인지기능장애는 섬망, 치매, 기억상실장애 3가지로 나뉜다. 섬망은 치매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입원치료를 받은 70세 이상 노인환자의 30%에서 나타날 정도로 흔하다.

섬망은 치매와 달리 어느 날 갑자기 증세가 나타난다. 심하면 환각, 환시, 악몽, 가위눌림이 동반된다. 어느 순간 과격한 행동을 보이다가 갑자기 너무 차분해지기도 한다.

서정석 건국대 충주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노인이 큰 수술을 받거나 독한 질병을 앓으면 갑자기 뇌 일부 기능에 혼란이 생긴다”며 “섬망은 일시적으로 나타나며 한 달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반면 치매는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고 오래 지속되며 기억장애, 언어장애, 시공간능력이 저하된다. 반면 섬망에 비해 의식 수준은 또렷한 편이다.

○ 환자 40∼50% 발병후 1년내 사망

섬망이 일어나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몸이 약한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을 때, 여러 가지 약물을 한꺼번에 복용할 때, 뇌에 산소 공급이 잘 안 될 때, 간장·신장에 질환이 있을 때 섬망이 나타나기 쉽다. 알코올이나 약물 금단현상이 나타날 때 순간적 정신착란이 일어나는 것도 섬망의 일종이다. 치매가 뇌혈관이 손상되거나 뇌세포가 죽어서 나타나게 되는 것과는 다르다.

섬망은 다른 질환에 대한 경고적 성격을 띤다. 심장마비, 심부전, 신장질환, 간기능 부전, 탈수, 약물 과다 복용, 혹은 금단 증상이 나타나기 전 섬망이 생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수술을 받고서 회복기간에 섬망 상태에 빠지기 쉽다.

하지현 정신신체의학회 학술이사는 “섬망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만큼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섬망이 나타났을 때 제대로 해결해 주지 않으면 사망률이 매우 높아진다”고 말했다. 섬망 환자의 40∼50%는 섬망 발생 후 1년 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 가까운 가족 방문 대화 자주해야

섬망이 나타났을 때는 우선 진정제나 수면제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 섬망 환자는 약물 부작용에 매우 예민해진다. 여러 가지 약물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병원에서는 섬망의 원인이 되는 질환을 먼저 교정해야 한다. 심하게 초조해하는 환자에게는 항정신병약물을 소량 투여하기도 한다. 주위 사람들은 섬망을 악화시킬 수 있는 환경 요소를 줄여줘야 한다. 병실에서는 주변 환경을 잘 정리하고, 집에서 쓰던 물건 한두 가지를 환자 주변에 가져다 두면 정서 안정에 좋다.

친근한 신체접촉과 환경 변화만으로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도 있다.

가까운 가족이 자주 방문하고, 환자와 자주 대화를 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피한다.

저녁 시간에는 그림자가 생기는 물품을 치워두고, 가능하면 낯이 익은 가족 1, 2명이 간병을 맡아 환자에게 일관된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다. 밤과 낮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날짜와 시간을 잘 모를 수 있으므로 낮에는 병실을 환하게 유지해 주고 달력과 시계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한다.

이동현 서울시립북부노인병원 정신과장은 “섬망을 방치하면 치매를 유발할 수 있고 사망률도 높아진다”며 “유발 요인만 적절히 치료하면 1, 2주 안에 완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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