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인터넷매체, 기업 등친다

  • 입력 2008년 6월 17일 03시 04분


“우리는 포털에 기사주는 언론사”

지난달 말 대기업 A사 임직원들은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떠 있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룹 내 역학구도를 다룬 기사의 내용이 사실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A사 홍보실 직원들은 기사를 포털에 공급한 인터넷 매체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이 매체 간부는 기사를 빼주는 조건으로 5000만 원을 요구했다. A사가 이를 거부하고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자 그는 “그런 식으로 하면 계속해서 안 좋은 기사를 포털에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인터넷 열풍을 타고 우후죽순으로 생긴 상당수 사이비 인터넷 매체들의 횡포에 한국의 기업들이 시달리고 있다. 이런 잘못된 구조를 가능케 하는 ‘핵심 고리’는 인터넷 포털이다.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B사는 올해 초 소속 계열사의 협력회사와 관련된 한 업체 직원에게 한동안 시달렸다. 이 직원은 B사의 정보를 빼낸 뒤 직접 인터넷 매체를 만들어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해명할 것이 있으면 해명하라”고 통보했다. 회사 측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기사를 안 쓸 수도 있다”며 돈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이 매체는 다른 주간지나 온라인에서 B사를 다룬 ‘부실한 기사’를 다시 게재하는 방법으로 계속 공격했다.

C사는 최근 일부 사이비 인터넷 매체들에 시달리다 못해 내부적으로 대책팀까지 꾸렸다. 회사 관계자는 “이 매체들끼리 일종의 네트워크가 있어 한두 군데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대책팀을 꾸렸지만 마땅한 법적 대응 수단이 없어 답답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정식 등록된 ‘인터넷 신문’은 현황 조사가 시작된 2005년 말 286개에서 지난해 927개로 3.24배로 급증했다. 정부 당국자는 “등록하지 않은 채 인터넷 신문 형태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등록 매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등록 요건이 있지만 의미를 잃은 지 오래고, 통제와 자정(自淨) 능력을 상실한 일부 인터넷 매체의 횡포는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기업 임직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기업 홍보실 직원들 사이엔 “회사 그만두고 나가서 인터넷 매체 하나 만들어 돈이나 벌자”는 자조 섞인 농담이 유행할 정도다.

○일각선 포털에 돈 주고 기사 게재 의혹 제기

기업들이 이들의 협박을 무시하지 못하는 데는 ‘포털’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광고주협회는 최근 일반 기업 관계자 60여 명과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 관계자들이 참석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기업 쪽 참석자들은 “포털이 사실상 언론 역할을 하면서 기사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한 대기업 중간간부는 “일부 정체불명의 인터넷 매체들이 대형 포털에 돈을 내고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재계에 다 알려진 얘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포털과 해당 매체들은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한 인터넷 매체로부터 시달리고 있다는 D사 직원은 “이런 매체들이 전화를 걸어 가장 먼저 얘기하는 게 ‘우리는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는 언론사’라는 것”이라며 “포털이 이들에겐 가장 큰 무기이자 생명줄인 셈”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에는 매월 이 같은 반(半)협박성 요구가 20∼30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기사 중 한두 가지 정도는 사실일 수 있어 이들 매체의 요구대로 돈을 주는 기업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 포털 관계자는 “문제가 있는 매체와 계약을 파기하려 해도 여기저기서 우리도 많은 압력을 받는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