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보면 더 재미있는 미술]임신부-태아에게 좋은 그림

  • 입력 2008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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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보다 곡선… 자연이 주는 편안함

자매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다. 피아노 건반에 뽀얀 손을 살포시 올려놓은 소녀. 그 옆에 기대 선 다른 소녀는 ‘우리 무슨 노래 부를까’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프랑스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 ‘피아노 치는 소녀들’은 보는 사람에게 편안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과학과 미술 전문가들은 이런 그림이 임신부의 정서와 태아 발달에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입을 모았다.

○뭉개진 윤곽선-삼각형 구도가 안정감 줘

“서 있는 소녀의 머리를 꼭짓점으로 하고 양팔을 따라 선을 그으면 삼각형이 그려지죠. 삼각형 구도는 안정감을 줘요. 커튼이나 머릿결, 드레스의 곡선 윤곽은 부드러움을 더해줍니다. 재질이 단단한 피아노조차 이 그림에선 건반 옆면의 곡선 부분이 강조돼 있어요.”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은 이런 요소들 덕분에 그림이 편안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한성대 지상현 교수는 여기에 두 가지 요소를 추가했다.

“그림을 확대해서 자세히 보세요. 윤곽선이 선명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피아노 위에 걸쳐 있는 소녀의 팔과 벽을 구분하는 윤곽선이 뭉개져 있습니다. 그래도 멀리서 보면 팔과 벽이 분명히 구분되죠. 그림을 보는 사람이 스스로 형태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감상자가 그림을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줘 편안함을 유발시켰다는 얘기다.

소녀들의 시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움을 주는 요소란다.

“우뇌는 전체적인 시각 정보를, 좌뇌는 부분적이고 세밀한 시각 정보를 주로 처리해요. 사람들은 대부분 대상의 전체적인 특징부터 파악한 다음 세부적인 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뇌가 먼저 활성화돼요. 이때 오른쪽 전두엽에 있는 눈 운동을 관장하는 부위도 함께 활성화되죠. 그 결과 눈은 왼쪽을 먼저 보게 됩니다.”

임신부의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면 흥분을 일으키는 신경전달 물질인 카테콜아민의 분비가 억제된다. 부신에서 주로 만들어지는 카테콜아민의 양을 조절하는 곳은 바로 뇌.

“임신한 여성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가 카테콜아민의 분비량을 급격히 늘립니다. 이는 태반을 경유하는 혈액을 통해 태아의 심장으로 들어가죠. 다행히 태반에는 태아 보호용 ‘거름 장치’가 있어요. 카테콜아민처럼 덩치 큰 스트레스 호르몬이 태아에게 잘 전달되지 못하게 걸러내는 겁니다. 하지만 카테콜아민이 너무 많으면 거름 장치가 넘쳐 태아에게 한꺼번에 전달되죠.”

한양대 박문일 교수의 설명이다.

○자연 떠올리면 태아 성장도 빨라져

이 관장은 꽃과 나비, 쥐가 등장하는 신사임당의 작품 ‘화훼초충도’도 추천했다. 자연을 그린 작품이 임신부의 정서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자들도 동의했다.

“동식물 그림이나 풍경화는 창문의 대체물 역할을 해 편안함을 줍니다. 창문이 없는 방에 오래 있으면 외부 정보와 단절돼 불안해져요. 좋은 전망을 선호하는 건 인간의 기본 욕구죠. 특히 임신 기간은 여성이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욕구에 가장 민감한 시기예요.”

결국 자연을 그린 그림이 이런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는 게 지 교수의 설명이다. 그뿐만 아니라 박 교수는 태아 발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임신 32주 된 여성에게 인위적 음향이 아닌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고 태아의 심장박동을 분석했더니 34, 35주 정도의 데이터가 나왔다는 연구가 있어요. 심장이 그만큼 빨리 성숙했다는 얘기죠. 조산아의 경우 심장 성숙이 빠를수록 살 가능성이 높아지니 발달 속도가 특히 중요해요. 음악뿐 아니라 미술 작품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이 기사에는 대한태교연구회장인 박문일 한양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와 미술심리학자인 지상현 한성대 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 교수, 미술전시기획자인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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