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業과 生業 사이, 시는 어떻게 태어날까

  • 입력 2008년 1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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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가 등장한 지 100년. 그 현대시 100년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주역은 단연 시인들이었다. 시가 고도의 언어 예술인 만큼 시인에게는 천재적인 예술적 영감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아름다운 시 작품은 시인들의 어떤 삶의 배경에서 빚어졌을까. 시혼(詩魂)을 불태우기 위해 시인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때로는 시와 생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때로는 시 하나만을 위해 의연하게 살아 온 시인들. 한국 현대 시인의 삶 100년사를 들여다본다.

○ 시인은 곧 지식인

일제강점기에 많은 인텔리가 문인의 길을 택했다. 식민 통치하에서 사회적 학문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기란 요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지식인은 곧 문인을 가리켰다.

실제로 많은 시인이 일본 유학생 출신이었다. ‘불놀이’의 주요한은 열여덟 살에 일본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제일고에 입학했으며, 이때 도쿄대에 다니던 소설가 김동인을 만나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문예 동인지 ‘창조’를 만들었다.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김기림도 보성고보를 마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도호쿠제국대를 졸업했다.

윤동주도 일본 유학생이었다. 문학의 길을 반대하는 부친에게 맞서 단식과 가출을 감행할 만큼 열렬히 문인이 되고자 했고, 일본 도시샤대를 다니면서 꿈을 이루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사상범으로 체포돼 스물여덟의 나이에 옥중에서 세상을 떠난다. 생전엔 무명의 문학청년이었지만 광복 뒤 문우들이 펴낸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가운데 한 명이 됐다.

○ 시인들의 직장은 언어를 다루는 곳

시작(詩作)만으론 먹고살 수 없으며 생계를 유지하려면 직업이 필요한 법. 일제강점기 시인들이 택한 직장은 대개 교사나 기자였다. 이런 직장은 언어나 문자를 다룬다는 점에서 시 창작과 멀지 않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이 광복 때까지 휘문고보에서 교사로 재직했으며, ‘깃발’의 유치환은 일제 말 압제를 피해 만주에서 가족과 지내다 광복 뒤 귀국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통영과 대구, 경주 등지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창작활동에 임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백석은 함경북도 함흥 영생고보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그의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뛰어난 기억력과 훌륭한 영어발음을 갖춘 ‘모던보이’”로 스승을 기억했다. 교사가 되기 전 그의 직업은 기자였다. ‘광야’의 시인 이육사도, ‘오랑캐꽃’의 이용악도 기자로 활동했다.

○ 궁핍한 시대, 열정과 낭만의 시인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의 생애는 도드라진다. 뛰어난 건축가였던 그는 총독부 건축부서에 들어갔지만, 문학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에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마다하고 직장을 나온다. 이후 다방 ‘제비’를 개업해 이태준 김유정 등 당대의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창작에 매진하는 한편 여성들과 파란만장한 연애사를 펼친다.

양계와 번역으로 생계를 이은 김수영의 삶은 그의 시가 쓰인 1950, 60년대의 핍진함과 일치한다. 동아방송에서 효과음악을 담당하면서 좋아하는 고전음악에 흠뻑 빠져 지낸 김종삼 시인은 그러나 말년에 알코올의존증으로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 다양해지는 시인들의 직업

일본 유학생 중심이었던 광복 전 문단과 달리, 대학이 자리 잡은 뒤 주로 국문과와 문예창작과에서 많은 시인이 배출됐다.

시만으로 먹고살기 어려운 것은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시인들이 택한 직업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교사나 기자로 일하는 이가 적지 않다. 김용택 도종환 안도현 씨가 현재 교사이거나 교사 출신 시인으로 잘 알려졌다. 가르치는 아이들을 통해서 시심을 얻는다는 김용택 씨의 얘기처럼, 이들 시인은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탄탄하다. 강은교 김명인 김혜순 씨 등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시작을 함께 하는 사례도 많다. 기형도는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고, 고은 시인도 불교신문 주필을 지냈다. 예나 지금이나 활자를 다루는 직업이 잘 맞는 편이어서 이병률 김민정 씨 등의 시인이 출판사 편집자로, 김경미 시인 등이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시 쓰는 일과 무관할 것 같은 직장을 다닌 시인들도 있다. 김기택 씨는 두산 식품BG 구매팀장으로 오랫동안 일했다. 문태준 씨는 불교방송 PD로 일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직업이 그저 밥벌이로 머문 것만은 아니다. 김 씨의 회사에서의 체험은 ‘사무원’이라는 명시로 거듭났고 문 씨가 PD로 일하면서 만난 불교도들은 그의 시에 나타난 불교적 세계와 닿아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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