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지혜가 기업을 움직인다

  • 입력 2007년 7월 5일 02시 59분


코멘트
LG CNS 김남일 과장은 평소 생각한 부동산 정보사업 아이디어를 지난달 말 회사 신사업 제안 게시판에 올렸다. 아이디어가 선정되면 그는 신사업을 주도할 기회를 얻는다.

하루 만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현행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군요.’ ‘비슷한 사업을 검토했는데 공인중개사들의 반발이 거셉니다.’

법무, 기술 등 각 분야의 사내(社內) 전문가는 물론 공인중개사 친척을 둔 직원까지 나섰다. 전문적인 조언과 개인의 생생한 체험까지 댓글에 담겼다. CNS는 온라인 토론으로 완성된 사업 아이디어들을 선별해 신규사업으로 연결시킬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댓글을 통한 전 사원의 신사업 구상 참여는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다양하고도 기발한 의견이 많이 나와 담당자들도 놀랐다”고 전했다.

국내 기업들은 대중이 인터넷을 통한 지식공유를 통해 최고의 지식과 지혜를 만들어 가는 ‘집단 지성(知性)’의 힘을 주목하고 있다. 열린 인터넷을 통한 ‘개방’ ‘참여’ ‘공유’로 대표되는 웹2.0 경영에 나선 것이다.

○ 집단지성 활용에 나선 기업들

석사 1만 명, 박사만 3000명이 넘는 삼성전자 연구원들은 지난해 5월부터 사내 인터넷(인트라넷) 업무 포털에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기술, 휴대전화 디자인 등 개인별로 관심 분야를 다룬 블로그가 1000개 이상 개설됐다.

요즘 휴대전화 개발팀의 화두는 미국 애플사가 지난달 29일 선보인 ‘아이폰’. 팀원들은 아이폰에 대한 반응이나 후폭풍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블로그를 참고한다.

“수천 개의 블로그 간에 경쟁과 진화를 통해 업무조직과는 별개로 전문가 그룹이 형성됐다. 통찰력 있는 의견이나 기발한 발상이 블로그에 들어 있다.”(강윤경 책임연구원)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방식’의 업무 시스템도 등장했다.

SK C&C는 6월 새 업무 시스템인 ‘하이퍼워크플레이스’를 구축하며 위키피디아 공동편집 기능을 도입했다. 과거에는 한 팀이 보고서를 작성하려면 오프라인이나 e메일, 메신저를 통해 팀원 간에 작업파일을 수없이 주고받아야 했다. 지금은 여러 명이 하나의 파일을 열어 동시에 작업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다.

○ 소비자 의견 미리 수집 제품 보완

기업 내부를 넘어서 소비자와 전문가 수준의 아마추어들로부터 지혜를 구하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도 등장했다.

안철수연구소는 올해 초 컴퓨터 보안 서비스인 ‘빛자루’를 정식 출시하기 전 블로그를 개설해 시험 버전을 누리꾼에게 공개했다. 제품을 구매하기도 전에 실망하는 위험 부담이 있었지만 소비자의 불만을 미리 수집해 완제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누리꾼이 블로그에 올리는 서평을 회사의 자산으로 공유하는 ‘생스 투 블로거(Thanks to blogger)’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저 책이 좋아 올리는 수많은 비평과 독후감이 회사의 무기가 된 것. 9개월 만에 확보된 블로그만 7500개.

○ 과거엔 없던 새로운 지식 확보 가능해

집단지성이라는 개념은 영국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이 정립했다. 그는 황소 몸무게 알아맞히기 대회에서 정답을 알아맞힌 사람은 없었지만 퀴즈에 참가한 사람들이 적어 낸 몸무게를 합쳐서 참가자 수로 나눠 보면 정답에 근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집단지성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활용할 수 있게 되자 기업이 웹2.0이라는 이름으로 경영에 도입하고 있다.

회사 내부의 집단지성 활용은 문서 형태로 구체화된 형식지(形式知)만 활용해 온 한계를 넘어 개인적인 체험과 같은 암묵지(暗默知)까지도 기업의 자산으로 만들어 준다. 기업 내 관료주의 제거에도 활용된다. 외부에서는 소비자나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웹2.0 경영의 대표주자는 미국의 생활용품 기업 P&G. 이 회사는 신제품의 35%를 외부 전문가 150만 명의 의견에 따라 개발한다. 연간 15억 달러를 들여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특허의 10%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연구개발(R&D)의 해답을 외부에서 찾은 것.

소프트뱅크 미디어랩 류한석 소장은 “일부 선도적인 국내 기업들이 웹2.0 경영을 도입했지만 아직 내부용에 그친다”며 “내부는 물론 외부와의 소통을 늘려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