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비타민]통합교과형 논술 정체 밝히기(5)

  • 입력 200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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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시험에서는 글 읽기 능력이 주요 평가항목이며, 특히 통합교과형 논술이 되면 읽기 능력의 비중은 더 커진다고 하였습니다. 근본적으로 논술은 글쓰기 시험인데 왜 대학들은 읽기 능력을 그렇게 중시하고 있을까요? 일단 대학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글 읽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는 원칙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직접적으로는 요즘 학생들의 현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즘 대학교수들이 모이면 바람직한 대학의 모습이나 사회 상황과 관련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쉽게 의견 통일을 이루는 몇 안 되는 주장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리 학생들의 책 읽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주장입니다. 글 읽기 능력, 즉 텍스트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능력은 대학 수학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능력입니다. 그런데 읽기 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대학 신입생의 현실입니다.

이는 한심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흥미롭고 기이한 현상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고등학생들은 3년 내내 읽기 중심의 시험을 준비한 학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수능 언어 시험은 현재 읽기 중심 시험입니다. ‘말하기-듣기-읽기-쓰기’ 중에서 우선 ‘말하기’는 평가하지 않습니다. ‘듣기’와 ‘쓰기’는 평가하긴 하지만 비중이 낮습니다. 결국 수능 언어 시험은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누어 문학은 시대별 장르별로, 비문학은 영역별로 지문을 주고 읽기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대학에 오는 학생들은 3년 내내 읽기 중심 시험을 대비해서 공부한 학생들입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때 쓰기는 많이 연습하지 않았으니 대학에 와서 제대로 못하더라도, 읽기 하나는 잘해야 할 게 아닙니까? 그런데도 상황은 그렇지 않으니 기이한 현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언어 시험 준비를 위해 3년 내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읽기 영역이니 읽기 능력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마땅한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단순한 분석은 위험하겠지만, 이는 2000자 미만의 짧은 지문을 읽고 선다형 문제를 푸는 수능 언어의 읽기 학습 때문에 생겨난 폐해임에는 분명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책을 읽으면 좋겠는데 정작 책은 읽지 않습니다. 약간 과장하자면, 3년 내내 수능 문제집에 나온 지문 정도 분량의 글만 읽고 있는 학생도 꽤 됩니다. 수능 지문은 그리 밀도 높은 지문이 아닙니다. 서너 문제 정도 문제를 출제하고 나면 더는 문제를 뽑아내기 힘들 정도로 중간 수준의 밀도를 가진 글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이 정도 분량과 밀도의 글을 두고 읽기 훈련을 하는 것 자체가 결코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다양한 텍스트를 읽은 것을 전제하고 그 능력을 평가하고자 하는 시험이지만, 상당수의 학생은 시험에 나오는 지문 길이의 글만 계속 읽고 있고 그 정도 밀도의 글만 계속 읽고 있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어느 대학이건 교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대학생들에게 책 한 권이나 혹은 책의 한 장(章)을 주고 호흡이 긴 글을 요약하게 하면 많은 학생들이 ‘그건 제 전공이 아닙니다’는 표정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또 분량은 500자 내외의 비교적 짧은 글이지만 분석이 요구되는 밀도 있는 글을 주고 내용을 정리해 보라고 하여도 “다음 기회에 하겠습니다”는 반응을 보이는 학생이 많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에서 텍스트를 읽는 능력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미 대입 논술에서는 읽기 부분이 강화되어 있습니다. 시험 시간이 충분하면 호흡이 긴 지문을 주고 읽게 하면 좋은데, 시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대체로 제시문의 분량은 짧아지지만 수준은 높아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대체로 길지 않은 글을 여러 개 주는데, 제시문의 수준은 수능 제시문보다는 한 단계 높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시문의 내용만 파악하는 문제도 출제되지만, 둘 이상의 제시문을 서로 관련지어 논의하거나 사례를 주고 제시문의 내용을 이에 적용하도록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때 사례는 실제 사례를 주거나 가상의 사례를 주더라도 실제로 사회에서 부딪히거나 부딪힐 수 있는 상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제시문의 수준이 높아지는 또 하나의 요인은 교육인적자원부의 논술 가이드라인 때문입니다. 교육부에서는 영어 제시문을 출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읽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논술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타당성 있는 지침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논술 제시문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환경을 축소 시뮬레이션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교육부 가이드라인에 대한 이견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영어 제시문을 통해 얻던 변별력을 이제는 다른 곳에서 확보해야 하는데, 그에 따라서 제시문의 수준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읽기가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기억합시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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