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윤성학, “매”

  • 입력 2006년 4월 27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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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받이는 사냥을 나가기 한 달 전부터

가죽장갑을 낀 손에 나를 앉히고

낯을 익혔다

조금씩 먹이를 줄였고

사냥의 전야

나는 주려, 눈이 사납다

그는 안다

적당히 배가 고파야 꿩을 잡는다

배가 부르면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꿩을 잡을 수 있을 만큼의,

날아 도망갈 수 없을 만큼의 힘

매받이는 안다

결국 돌아와야 하는 나의 운명과

돌아서지 못하게 하는 야성이 만나는

바로 그곳에서

꿩이 튀어오른다

- 시집 ‘당랑권 전성시대’(창비) 중에서

목전의 꿩을 뿌리치면 창공을 얻을 수 있으련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가까스로 꿩을 낚아채지만 돌아오는 것은 몇 점 살코기뿐. 날개 있는 짐승도 저러할진대 날개 없는 사람을 얽매고 있는 원심력과 구심력은 얼마나 정교할 것인가. 어떤 이는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젊은 날의 원대한 꿈과 야망과 포부 대신, 내 꽁무니에 붙어 있는 시치미는 누구의 것인가? 가족과, 결혼과, 직장은 원심력인가 구심력인가? 원심력만 있으면 돌아올 곳이 없고, 구심력만 있으면 달아날 곳이 없다. ‘모든 꽃들은 그 경계에서 피어난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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