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82년 무법자 美 제시 제임스 사망

  • 입력 2006년 4월 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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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제임스(1847∼1882).

그는 미국 서부시대를 주름잡은 무법자다. 그에 대한 수많은 노래와 책이 등장했으며 그의 삶을 그린 영화만도 38편에 이른다. 다음 달에는 미남 배우 브래드 피트가 나오는 ‘제시 제임스의 암살’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된다. 그는 대중문화를 통해 불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1800년대 후반 미주리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한 ‘제임스 갱’ 조직의 두목이었다. 미주리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과 남군 사이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 전투는 북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남군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북군의 공격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난 뒤 남군 게릴라 부대에 합류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갱을 조직해 30여 차례 은행과 철도를 털었다.

은행과 철도는 신생국가 미국을 통합하는 수단이었다. 철도를 통해 미국은 지리적으로 연결됐고 은행은 국가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어 줬다. 남부인들은 은행과 철도를 터는 이 무법자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것은 연방정부와 북부 자본가에 대한 보복이었다.

제임스는 쇼맨십에 능했다. 다른 갱 멤버들과는 달리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강도 행각이 끝나면 카우보이모자를 살짝 들어올려 인사하는 예의도 잊지 않았다. 아름다운 숙녀에게 돈다발을 던져 주는 신사도(?)도 발휘했다.

16년간의 강도 생활을 청산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1882년 4월 3일 집에서 후배 강도가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후배 강도는 제임스의 목에 걸린 현상금 1만 달러를 노리고 총을 겨눴다.

사람들은 ‘영웅’의 허무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살아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1995년 후손들은 관에서 시신을 꺼내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 결과 시신은 제임스의 것으로 판명됐다.

그는 잔인무도한 강도였다. 수십 달러 때문에 어린아이를 살해하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나눠 줬다는 증거도 충분하지 않다. 의적(義賊)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셈이다.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그에게 열광한다. 그의 삶이 던져 주는 일탈(逸脫)의 카타르시스 덕분이다. 남북전쟁, 노예제도와 같은 정치적 배경은 모두 탈색되고 그는 거대 권력에 도전한 개인적 영웅, 서부 활극시대의 낭만적 영웅으로 기억될 뿐이다. ‘도둑’은 ‘전설’로 부활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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