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5년 국내 첫 시험관 아기 탄생

  • 입력 2005년 10월 12일 0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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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아무데서나 이런 소리 하다간 큰일 난다. 원수 같은 자식이라도 없어서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부부 10쌍 가운데 1쌍은 아기를 갖지 못한다고 한다. 바로 이런 이들을 위해 개발된 게 ‘시험관 아기’다.

1985년 10월 12일은 국내 최초의 시험관 아기인 천희, 천의 이란성 쌍둥이 남매가 태어난 날.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록 불임이었던 천근엽 서정숙 씨 부부는 서울대 의대 장윤석 교수팀을 찾았고 2월 11일 시술이 이뤄진지 9개월 1일 만에 남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제1호 시험관 아기는 1978년 7월 25일 영국에서 태어난 루이스 브라운. 한국은 세계에서 18번째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킨 국가가 됐다. 아시아에선 싱가포르 일본 대만에 이어 4번째.

당시만 해도 세상은 떠들썩했다. 현대 의학의 기적이란 감탄과 함께 신의 영역에 도전한 경솔함을 지적하는 윤리 논쟁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이들 남매의 성장 과정은 부모의 정성스러운 보호 덕분에 전혀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그랬던 이들의 생활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개월 전. 3월 22일 장안대에 다니던 의 씨가 휴학을 하고 경기 의정부시 306보충대에 입소했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곧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들 남매를 성년의 날(매년 5월 셋째 주 월요일로 올해는 5월 16일) 홍보 모델로 섭외했다. 중앙선관위는 일반인 가운데 독특한 사연을 지닌 인물을 찾던 중 생명공학의 역사적 시발점인 첫 시험관 아기의 선거권이란 주제를 잡았다.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 온 이들 남매가 모델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이제 성인이 된 만큼 자신의 행동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부모의 격려가 계기가 됐다고 한다.

시험관 아기는 이후 27년간 전 세계에서 약 30만 명이 태어났고 초창기 10% 안팎이었던 임신 성공률은 30%를 넘어섰다. 하지만 대개 3회 이상의 시술을 해야 성공하고 1회 시술에 300만 원 남짓이 들어 아기를 갖기 위해선 1000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드는 게 흠.

이에 따라 정부에선 불임 부부에게 2회에 걸쳐 시술 비용의 50%를 지원하는 출산 종합대책을 세워놓은 상태라고 하니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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