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인터넷 안티사이트

  • 입력 2000년 10월 6일 18시 30분


인터넷이 뉴스를 만드는 세상이다. ‘모든 네티즌은 기자’라는 모토로 운영되는 인터넷 언론은 신속성에서 때로 종이 신문과 방송을 앞지른다. 광주 5·18 전야제에서 386세대 의원들이 술판을 벌인 사건은 술자리에 참석했던 임수경씨가 맨 처음 인터넷에 글을 띄웠다. 이 글을 네티즌들이 이곳저곳으로 퍼옮겼고 종국에는 오프라인 언론이 베꼈다. 인터넷 언론은 기존 언론의 취재가 미치지 못하는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읽을 거리와 정보를 캐내며 대안(代案)언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말기암(癌)과 싸우는 30대 주부의 사이버 투병기는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끌더니 최근 종이 신문에서도 관심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33세 남편과 5세 아들을 둔 이 주부는 직장에서 생긴 암세포가 폐와 골반으로 번졌다. 그녀는 5일 동안 침묵하다 45번째 칼럼을 띄우며 ‘아프고 울고 기도하느라 컴퓨터를 켤 엄두도 못냈다’고 말한다. ‘제발 힘내세요’ ‘희망을 가지세요’라는 독후감이 줄을 잇는다. 이른바 쌍방향 언론이다. 진통제의 강도를 점점 높여간다는 이 투사는 몇회까지 연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종이 신문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는 안티사이트가 큰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중고교생들의 안티스쿨 사이트는 교육부의 두발규제 완화 발표가 나오기까지 10만명에 가까운 학생으로부터 두발규제 반대 서명을 받았다. 기업들은 안티사이트를 이용한 소비자 운동에 대응하느라 머리를 싸맨다. 김영삼 전대통령 등 특정 정치인에 대한 안티사이트도 생겼다. 안티병원 사이트는 의료계 폐업 장기화에 따른 환자들의 피해고발을 받는다.

▷인터넷 언론의 치명적인 결함은 기사를 검증하고 걸러내는 ‘문지기’가 취약한 것이다. 왕왕 미확인 소문이나 조작된 이야기가 사이버 공간에 떠 특정 단체나 개인에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힌다. 호응이 높은 시민운동 사이트일지라도 마구잡이 폭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고양시 러브호텔 안티사이트에는 러브호텔 출입 차량의 번호가 떠있다. 만에 하나 불륜 목적이 아니라 신도시에 출장 온 선량한 투숙객의 차량이라면 그 피해는 누가 구제해주나.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