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원년 1919년’ vs ‘건국은 혁명’에 대한 이종찬 아들의 편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7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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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칼럼 <이종찬의 ‘원년 1919년’ vs 김영호의 ‘건국은 혁명’>이 나간 당일, 이종찬 광복회장의 아들인 이철우 연세대 로스쿨 교수가 반론을 제기해왔다.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교수의 견해도 독자와 함께 경청하고 싶어 원고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이 교수의 원고를 기다리던 중 14일 이종찬 광복회장의 편지가 날아오는 바람에 먼저 실렸으나 나의 ‘도발’이 좋은 공론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고 본다(독자님들의 단순 악플 아닌 진지한 견해는 환영합니다^^). ‘김순덕의 도발’에 부자(父子)가 반론에 나선 보기 드문 사례가 될 듯하다. 편지 형식으로 원고를 보내준 이 교수께 감사드린다.

김순덕 대기자께







7월 12일자 <이종찬의 ‘원년 1919년’ vs 김영호의 ‘건국은 혁명’> 칼럼에 대해 제가 반론을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종찬 광복회장(경칭 생략)께서 보내신 반론이 이미 게재되었기에 제가 굳이 반론을 써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기왕에 쓰기로 한 것이니 보완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종찬의 ‘원년 1919년’ vs 김영호의 ‘건국은 혁명’
https://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230711/120187213/1
▶‘1919년 원년’ vs ‘건국은 혁명’에 대한 이종찬의 편지
https://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230714/120237922/1

저는 지금의 논쟁을 1919 vs. 1948로 프레임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1919년을 대한민국의 원년으로 삼자는 광복회의 주장이 과연 1948년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일까요? 1948년 헌법은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으로부터 많은 것을 계승했고, 특히 영토조항은 대한제국으로부터의 국가적 계속성을 전제로 해서 만든 것인데, 그런 헌법을 선포한 1948년의 의의를 광복회가 부정하거나 축소하려 할까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 행사. 동아일보DB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 행사. 동아일보DB
지금 논쟁의 구도는 1919년 vs 1948년이 아니고, 역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역사적 자기인식을 따르자는 입장과 그것을 변개(變改)하려는 입장의 대립으로 보아야 합니다. 역대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의 국가적 계속성과 동일성을 분명히 선언해왔습니다. 즉 대한민국은 1948년에 비로소 건국된 신생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제 통치를 불법, 무효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외부인이 어떻게 보든, 대한민국은 그런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대한민국의 공식적 입장을 변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되었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것 역시 잘못입니다). 대한민국의 공식적 입장을 변개하려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반(反)대한민국적”이라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습니다.

일제의 통치가 불법, 무효였음은 독립운동가 이승만 대통령은 물론이고 역대 대한민국 정부가 견지해온 역사인식입니다. 한일국교정상화를 이룬 박정희 정부는 한일기본관계조약 제2조에 1910년의 병합조약과 그 이전의 조약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조항을 집어넣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그 조약들이 당초부터 무효였음을 확인한다고 한 반면 일본은 그 조약의 발효시부터 무효가 되었다는 취지로 문구를 애매하게 작성한 다음 일제 통치를 합법적인 것이라 주장해왔습니다.

국제사회는 대한제국이 가입한 만국우편연합과 제1차 적십자협약의 효력이 대한민국에 지속됨을 인정했고, 1986년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제국이 체결한 3개의 다자조약의 효력이 계속되었음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만국우편연합과 적십자협약에 새로이 가입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과 북한은 차별화됩니다.

1898년 작성된 만국우편연합 관계 약정을 준수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비준서. 동아일보DB
1898년 작성된 만국우편연합 관계 약정을 준수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비준서. 동아일보DB
더 많은 예를 들 수 있겠지만, 8월 10일 광복회와 독립기념관이 공동주최하는 학술회의에서 대한민국의 국가적 존재성(statehood)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들의 발표와 토론이 있을 것이기에 여기에서 그치겠습니다.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의 국가적 계속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그 학술회의에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대기자께서는 이인호 선생이 광복회장에게 보낸 공개서한과 김영호 통일부장관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인용하면서 1948년 건국설에 힘을 보태고 계십니다. 김영호 통일부장관이 현 정부의 장관이 되면 현 정부의 입장에 충실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인호 선생에 대해서만 언급하자면, 그분은 광복회장이 취하지도 않은 1919년 건국설을 공격하면서, 대한민국이 1948년에야 비로소 국가로 태어났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선동되어 광복회 앞에서 현수막을 치고 데모를 하는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은 국민도, 영토도, 주권도 없었다고 써놓고 있습니다. 역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 인식에 반하는, 일본의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이 광복회를 겁박하는 엽기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인호 선생은 분명히 답해야 할 것입니다.
일제 지배가 합법적이고 유효했기 때문에 대한제국은 소멸했고, 대한민국은 그와 무관한 신생국으로서 1948년에 건국된 것입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까? 역대 대한민국 정부가 그런 입장을 취했습니까?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된 신생국이라면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체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저는 학자이기 때문에 순수학문적 견지에서 일제 강점기 한국의 statehood를 논하는 다양한 견해를 경청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스스로가 어떻게 자기를 정의하느냐는 팩트의 문제입니다. 1948년 건국설이 대한민국의 내부적 관점이 아닌 외부적 관점, 특히 일본의 관점을 들여와서 대한민국의 내부적 관점을 변개하려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정치적 관점이나 진영과는 무관하게 상식적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비판입니다.

15년 전부터 설파되기 시작한 1948건국설로 인해 벌어진 논란은 종식되어야 합니다. 역대 대한민국 정부가 취한 인식에 충실하면 많은 갈등이 해소됩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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