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처벌 완화’ 추진 논란…“환자에게 절대 불리”

  • 뉴시스
  • 입력 2023년 2월 6일 16시 07분


코멘트
정부가 최근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지원책 중 하나로 ‘의료사고 처벌 부담 완화 특례법(이하 특례법)’ 제정을 검토한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의료사고 처벌 부담 완화 특례법 제정에 앞서 의사와 정부가 국민의 신뢰부터 회복하고, 의사면허 관리의 공정성을 담보할 관리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1일 비의도적으로 발생한 의료사고에 한해 가해 의료인 처벌을 완화하는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내놓았다. 소아청소년과·내과·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 등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주원인 중 하나인 고위험 진료에 따른 의료소송 부담을 덜어낸다는 취지다.

그동안 고위험 진료에 따른 의료소송 부담은 높은 업무강도와 낮은 수가(진료비)와 함께 필수의료 분야 기피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혀왔다. 필수의료는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업무의 특성상 의료사고 위험이 높아 의료 소송 부담이 크다.

문제는 특례법 제정 검토를 두고 의료계와 환자 간 입장차가 뚜렷해 사회적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의료계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과 소극적 진료를 줄이려면 특례법을 제정해 의료소송 부담을 덜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고위험 진료 부담과 법적 분쟁에 대한 의료인의 걱정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고위험 수술과 응급환자 치료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진료 중 의료사고가 나더라도 중대 과실이 아니라면 형사처벌을 가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정상적인 의료행위의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의사에게 과도한 형사처벌을 내리는 것은 의사들이 최선의 진료보다 방어적 진료를 택하고, 필수의료를 회피하도록 내모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환자단체는 국내의 경우 의료사고 입증 책임이 환자에게 있는데, 특례법까지 제정되면 환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의료사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법률 제정부터 추진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장은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은 의학적 지식과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의료과실과 의료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고 의료소송을 해도 비용과 시간이 만만찮게 소요된다”면서 “환자가 아닌 의료인이 의료과실이 없거나 의료사고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책임 전환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형사소송의 결과는 민사소송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현재 의료사고 입증 책임이 환자에게 있어 형사소송을 해도 의사는 대부분 무죄나 벌금 처벌을 받는 데 그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특례법 추진에 앞서 국민의 정부와 의사에 대한 불신부터 해소해야 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법적·제도적 미비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환자가 의사의 과실 책임을 입증하기 어려운 가운데 특례법마저 제정되면 국민의 반발에 부딪히고 피해만 커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이평수 전 차의과학대 보건의료산업학과 교수는 “환자들의 반발은 의사와 정부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다”면서 “대책 없이 특례법이 생기면 무책임한 의료사고로 환자와 국민의 피해가 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전 교수는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만 해도 결국 대법원에서는 무죄 판결이 나왔고, 가수 신해철씨를 의료사고로 숨지게 한 의사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최근 다른 의료 과실로 또 실형을 선고 받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앞서 2017년 이화여대목동병원에선 중환자실서 치료받던 신생아 4명이 패혈증으로 숨졌다. 복지부 조사 결과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이 검출된 오염된 주사기가 원인으로 파악됐고, 신생아 중환자실 주치의와 간호사 등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의료진 7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의료진이 감염관리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과실이 있지만, 이로 인해 신생아들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인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가수 신해철씨를 수술했던 의사 A씨는 2014년 60대 남성 환자의 대퇴부 심부 정맥 혈전을 제거하는 수술 도중 혈관을 찢어지게 하는 업무상 과실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지난달 말 금고 1년을 선고 받았다. 앞서 A씨는 2014년 가수 신씨를 상대로 장 협착증 수술 중 장기에 구멍을 내고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혐의가 인정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됐다. 또 2013년 30대 여성에게 지방흡입술 등을 집도한 뒤 업무상 과실로 흉터를 남긴 혐의, 2015년 위 절제 수술을 한 호주인을 후유증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2019년 1월 금고 1년 2개월을 선고 받았다.

의협은 의료계 스스로의 자정능력이 중요하다며 자율징계권을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도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의협은 결격 사유가 있거나 비윤리적인 의사가 진료를 다시 시작해도 이를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현재 의협에 가입돼 있지 않은 의사들이 절반 이상인 데다 의사들은 의협 산하 16개 시·도의사회를 거치지 않고 관할 보건소에 개원 신고만 하면 병원을 열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재활의학과 전문의 A는 “의료사고가 잊을만 하면 터져 나오고 있는 만큼 의료계 스스로의 자정 능력도 중요하다”면서 “신뢰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면허 관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 의사, 환자, 정부 등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고루 참여하는 의사면허 관리기구도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 교수는 “현재 의사를 견제할 장치가 없는 만큼 의사면허 관리 기구에 의사들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들어가야 한다”며 “영국 사례처럼 의사뿐 아니라 환자, 정부, 교육자 등 의료 관련 이해관계자들도 모두 참여해 의사면허 관리 규율을 만들고 모니터링하는 시스템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의사면허 관리기구인 GMC(The General Medical Council)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위원회 구성원 12명 중 6명만 의사다. 나머지 6명은 환자, 정부 측 관계자, 교육자 등 의료 관련 이해관계자들이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