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전단 안되고 쌀 보내기는 되고…판결 엇갈린 두 탈북민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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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0월 1일 21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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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지난해 7월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법인에 대한 통일부의 설립 허가 취소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7.27/뉴스1 © News1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지난해 7월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법인에 대한 통일부의 설립 허가 취소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7.27/뉴스1 © News1
비영리법인의 설립이 취소된 두 탈북민단체의 명암이 엇갈렸다.

법원은 북한정권을 비난하는 대북전단을 날린 탈북민단체의 법인 설립 허가 취소는 정당하다고 판단한 반면 북한에 쌀 보내기 사업을 한 탈북민단체의 법인 취소는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1일 큰샘이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비영리법인 설립허가 취소처분을 취소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큰샘이 페트병에 쌀을 담아 바다에 띄워 북한에 보내는 사업은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누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해 한반도 평화통일에 이바지한다’는 큰샘의 당초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통일부는 쌀 보내기 사업이 한반도 긴장상황을 조성했기 때문에 법인의 설립 취소 사유인 ‘공익을 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북한이 다른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문제삼으며 남북간 통신연락선을 끊고 개성공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철거한 사실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북한이 쌀 보내기 사업까지 특정해 비난하거나 그에 대한 조치를 정부에 요구한 바 없고 북한의 행동과 큰샘 측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도 명확하게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제18회 북한자유주간을 기념해 4월 25일부터 29일 사이에 DMZ와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10개의 대형애드벌룬을 이용해 대북전단 50만장, 소책자 500권, 1달러 지폐 5천장을 살포했다고 30일 밝혔다.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2021.4.30/뉴스1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제18회 북한자유주간을 기념해 4월 25일부터 29일 사이에 DMZ와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10개의 대형애드벌룬을 이용해 대북전단 50만장, 소책자 500권, 1달러 지폐 5천장을 살포했다고 30일 밝혔다.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2021.4.30/뉴스1
재판부는 북한의 이런 강경정책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북한의 대남전략에 따른 행위로 볼 여지가 많다고 했다. 재판부는 설령 쌀 보내기 사업 때문에 북한의 도발행위가 있었더라도 북한이 도발의 명분으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나라의 공익을 해쳤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만약 북한이 도발 위협의 명분으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평가한다면 북한 정권에 비판적이고 비우호적인 행위는 언제든 공익을 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고 이를 설립허가 취소 사유로 삼는다면 극단적으로 북 체제나 정권에 우호적인 활동을 하는 비영리법인만 남게 된다”며 “이런 결과는 헌법 질서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의 통일정책이나 통일추진 노력에 저해가 되는 활동이나 사업을 했을 경우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통일부의 허가조건은 법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해 위법하므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표현 자체도 지나치게 불명확하고 판단 시점이나 기준 모두 주무관청 자의에 맡겨져 있어 부적절하다”며 “주무관청이 설립허가를 하면서 취소권을 유보하는 것과 다름 없어 비영리법인의 법적 지위를 지나치게 불안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6·25전쟁 69주년을 맞아 지난 2019년 6월25일 새벽 인천시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에서 대북전단 50만장을 북쪽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2019.6.25/뉴스1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6·25전쟁 69주년을 맞아 지난 2019년 6월25일 새벽 인천시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에서 대북전단 50만장을 북쪽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2019.6.25/뉴스1
또 “일반적 행동의 자유, 양심의 자유,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점에서도 부적절하다”고 했다.

반면 같은 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정상규)는 대북전단을 살포해 법인허가가 취소된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통일부의 처분이 정당하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우리나라와 북한이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전단 살포는 법인의 사업목적과 직접 관련이 없고 법인 설립목적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전단 살포가 접경지역의 안전이라는 공공이익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북전단 지속 살포는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야기하고 남북 군사긴장을 고조해 평화통일 정책 추진에 중대 영향을 끼치는 공익 침해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 긴장완화를 통한 통일정책 추진의 공익이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보다 크다고 보여 (법인설립 취소처분이) 재량권 일탈남용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큰샘 사건을 심리한 행정6부가 통일부가 정한 허가조건을 무효라고 판단한 것과 달리 자유북한운동연합이 허가조건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지난해 7월 통일부는 대북전단(삐라)과 물품을 살포한 큰샘과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했다.

이들 단체는 탈북자 박상학·박정오 형제가 각각 대표를 맡고 있으며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대북 전단을, 큰샘은 페트병에 쌀을 담아 북한에 살포했다.

통일부는 두 단체의 활동이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의 위험을 초래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해 공익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또 대북전단과 물품 살포가 법인 설립목적 이외 사업에 해당한다고 봤다.

큰샘과 자유북한운동연합은 통일부의 법인 설립허가 취소 처분에 반발해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처분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집행정지도 신청했는데 법원은 두 단체의 집행정지를 모두 받아들였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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