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봄날 어렵다’…文대통령 ‘임기말 희망’ 저버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6일 11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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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뉴시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뉴시스
북한은 지금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해 국제 사회가 펴고 있는 대북제재가 장기화하고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생명줄이나 다음 없는 북중 무역이 끊기면서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8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경제실패를 자인한 데 이어 연초 노동당 대회에서도 이례적으로 경제실패를 거듭 시인할 정도로 경제가 사실상 거덜 난 상태다.

김 위원장이 “일찍이 본 적 없는 최악 중의 최악으로 계속된 난국”이라고 인정하고,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997년 -6.5%였던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낮은 -10%로 추정될 정도로 경제 상황이 나빠 이를 조금이라도 회복시키려면 남북협력을 포함한 국제 사회의 지원이 절실한 데도 북한은 해오던 대로 연례적인 한미연합훈련을 시비 걸어 우리 정부와 미국을 협박하는 길을 택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16일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정부와 대북정책을 다시 짜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를 동시에 겨냥한 협박 담화를 노동신문을 통해 내놓았다.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는 제목의 이 담화는 주로는 규모를 줄이고 야외기동훈련 없이 18일까지 실시하는 연례 한미연합훈련을 ‘전쟁연습’이라며 맹비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으나 핵심은 곧 대북정책의 골격을 내놓을 예정인 미 바이든 행정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을 향한 언급은 담화 말미에 언급된 두 문장이 전부이지만 이 대목이 담화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김여정은 “이 기회에 우리는 대양건너에서 우리 땅에 화약내를 풍기고 싶어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의 새 행정부에도 한마디 충고한다”며 “앞으로 4년 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미국을 향해 엄포를 놓았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 News1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 News1

지금 바이든 행정부는 대선 공약 대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톱다운 방식’ 외교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한 대북정책을 가다듬고 있다. 지도자 간의 직접 만남을 통해 실효성 없는 비핵화 합의를 해준 뒤 대북 경제재재를 철회 또는 완화시키려 했던 북한의 대미전략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먹혀들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미리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겠다는 경고를 날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북전략을 짜지 않는다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 초반부터 핵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해 미국 정부의 동북아전략을 흔들어놓겠다는 게 북한의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전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기 초반이었던 2017년에도 북한은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수차례 벌이고 ‘6차 핵실험’까지 감행해 ‘화염과 분노’로 일컬어지는 북미 간 최악의 긴장상황을 초래한 바 있다.

미국의 외교안보 수장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을 하루 앞둔 시점에 담화를 낸 것도 어떻게든 미국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북한의 의도를 가늠케 한다. 북한은 일단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진행된 미국의 접촉 시도를 모두 거부하고는 있지만 속셈은 머지않아 재개될 수 있는 바이든 행정부와의 실무 비핵화 협상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촉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간 수십년 간 진행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외교적인 비핵화 성과가 필요한 나머지 북한에게 제재 해제 등을 양보했던 미국 행정부의 약한 고리를 잘 이용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북한에 대한 압박이 전보다 한층 강화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되고 있지만 4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는 미국 정치상황의 빈틈을 십분 활용해 그간 고도화시킨 핵과 미사일 능력을 국제 사회에서 사실상 인정받는 동시에 미국으로부터도 대북제재 해제 같은 일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바이든 행정부에 엄포를 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연례훈련인 3월 한미연합훈련을 시비 걸어 남북군사합의서 파기까지 거론하면서 우리 정부를 거칠게 협박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 이후 ‘통미봉남’ 전략을 더 강화하려는 의도로 관측된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1년 연기돼 7월 개막되는 일본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답보상태인 북미간 비핵화 협상의 새 돌파구를 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평창동계올림픽 시즌2’ 외교 구상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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