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누아르? 블랙코미디? 객석 휘감은 ‘검은 웃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8월 23일 05시 45분


■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 국내 첫 선

1940년대 음울한 할리우드 배경
현실과 대본 속 세계, 이중구조 눈길
즉흥 스캣송 등 스타일리시한 연출

블랙코미디 누아르. 꾹 짜면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것이 1989년이니 30년이나 된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첫선이다. “이거 영화로 나왔던 거 아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멕 라이언이 나왔던 동명의 영화 ‘시티 오브 엔젤’이 있었다. 하지만 제목만 같을 뿐 아무 관련이 없다. 영화는 뮤지컬보다 9년 뒤에 나왔다. ‘시티 오브 엔젤’은 ‘천사의 도시’, 우리가 잘 아는 로스엔젤레스(LA)를 의미할 뿐이다.

뮤지컬의 배경은 1940년대 미국 할리우드. 음울하고 냉소적인 범죄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다. 눈이 아플 정도로 강조된 블랙과 화이트의 대비, 거칠거칠한 질감, 예의 염세적이고 시크한 사설탐정 등장, 재즈클럽의 자욱한 담배연기, 내 편인지 악당인지 알 수 없는 팜므파탈 여주인공, 돈과 권력을 쥔 악당들이 서로 총질을 해대던 누아르 영화의 전성기.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은 이 전설적인 필름 누아르 시대를 무대로 옮겨놓은 작품이다.

1막을 보고 나서 떠오른 단어는 ‘스타일리시(stylish)’였다. 이렇게 스타일리시한 뮤지컬을 국내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가사없이 즉흥적으로 부르는 스캣 송으로 시작되는 프롤로그 장면에서 이미 “좋은데?”하고 말았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보고 “누아르 영화를 뮤지컬로 보는 것 같다”고 했단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프랭크 밀러 그래픽 노블(예를 들어 씬시티)의 뮤지컬 버전이라는 느낌이 세다.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쏟아 부은 영상효과가 한 몫을 했다.


‘시티 오브 엔젤’은 극중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극작가 스타인의 현실 세상과 그의 대본 속 탐정 스톤의 가상공간은 컬러와 모노톤으로 대비된다. 객석 쪽에서 배우에게 조명을 쏘아 만든 그림자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는 배우들이다.

스타인과 스톤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1인 2역을 맡고 있다. 예를 들어 스타인의 연인인 게비가 영화 속에서 스톤의 옛 애인인 여가수 바비로 등장하는 식이다. 현실과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조인트’를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작은 쾌감이 웃음으로 폭발한다. 맨 앞에 언급했지만 이 작품은 ‘정통 누아르’가 아니라 ‘누아르’를 걸친 블랙코미디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1막 끝에 ‘넌 안 돼 나 없인(You‘re nothing without me)’을 노래하며 대립각을 세운 스타인과 스톤은 2막 끝에서 ‘너 없이 난 안돼(I’m nothing without you)’를 부르며 피날레를 맺는다. 사실 이 작품이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것일 것이다. 10월 20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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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으로 끝맺는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의 피날레. 사진제공 | 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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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스톤(테이 분·왼쪽)이 사건 의뢰비로 받은 수표를 들고 비서 울리(박혜나 분)와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 | 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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