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하준경]초저출산 사태, 추경을 실시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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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지나면 인구 30% 축소… 재정계획·연금예상수령액 무의미
양육부담 국가가 보장해야
물샐틈없는 돌봄 서비스 제공하려면 추경에 저출산 해결안 반영해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정부는 지금 추경이 필요한 이유로 에코붐 세대가 노동시장에 쏟아져 나와 대규모 청년실업이 우려된다는 점을 꼽고 있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전에 그 자녀들(에코붐 세대)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리라는 사실은 벌써 오래전부터 예고됐었다. 따라서 그 대책도 본예산에 이미 반영됐어야 옳다.

그렇다고 추경이 불필요한 상황도 아니다. 지금 한국에선 전쟁에 버금가는, 예상을 뛰어넘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초저출산이다. 새삼스럽게 들리지만 최근의 추세는 전문가들이 예측한 범위의 아래를 뚫고 내려가는 심각한 수준이다. 작년 출생아 수는 통계청의 최저 시나리오보다도 3만 명 적은 35만7700명이었다. 전년 대비로는 12% 줄었다. 올해 1월에는 지난해 1월보다도 또 8%나 줄었다.

이 추세를 놔두면 예상보다 빨리 1, 2년 내에 인구의 자연 감소가 시작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올해 1월 두 달간 인구가 1400명 자연 감소했다. 통계 작성 후 처음이다. 이렇게 한 세대가 지나면 한국의 인구는 30% 이상 축소될 뿐 아니라 생산 인구가 노인 인구보다 적게 된다. 기존 인구 추계에 근거한 중장기 재정 계획이나 연금 예상 수령액은 모두 무의미해진다. 생산자와 납세자 없인 국가 재정도 못 버틴다.

이 상황에서 정부는 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는지, 또 초저출산 추경은 왜 얘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프랑스는 출산율 1.79일 때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일본은 출산율 1.42에 인구 전담 장관직을 만들었는데 한국은 출산율 1.05에도 덤덤하다. 한 해 출생아 수가 1년 전 예측치보다도 수만 명 준다면 전쟁 상황이다.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희생돼 흔적이 없을 뿐이다. 건전한 인구 구조와 공동체의 유지는 보수·진보의 문제도 아니고 큰 정부, 작은 정부의 문제도 아니다. 전시에 실탄 사용을 주저하는 정부가 세상에 어디 있나. 보수주의자인 에드먼드 버크도 사회는 살아 있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파트너십, 협력관계라고 했다. 윗세대가 피땀 흘려 지켜준 땅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다음 세대가 태어나지도 못하는 사태를 방치하는 것은 파트너십에 대한 배신이다. 이 파트너십의 붕괴가 지금 초저출산 문제의 핵심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과거엔 아이들이 마을 공동체의 돌봄 속에 자라났다. 골목에 나가 저녁까지 뛰노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양육 부담이 부모 개개인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국가가 공동체 기능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아직도 과거의 틀을 못 벗어난다. 예컨대 기업들에 초등 입학기 자녀를 둔 직원이 오전 10시에 출근할 수 있게 협조해 달라 하고, 협조하면 인센티브를 준다고 한다. 좋은 제도지만 보완책일 뿐이다. 정부와 공공의 일을 민간에 떠넘기고 생색내면서 재정은 덜 쓰는, 그리고 실효성은 없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기 쉽다. 제대로 하려면 적어도 미국 수준으로 학부모 출근 2시간 전부터 퇴근 2시간 후까지, 학교가 일찍 끝나든 방학을 하든 물샐틈없이,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한다. 서비스 대상도 맞벌이 가정에 그치지 말고 부모가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는 경우까지 확대해 경력 단절자들에게도 길을 터줘야 한다.

아이들 ‘학원 뺑뺑이’에 매달 수십만 원을 쓰고 중간에 비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또 돌봐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 (예비) 부모의 마음으로, 교육과 접목된 믿을 만한 ‘온종일 돌봄’ 서비스를 널리 그리고 빨리 제공해주기 바란다. 돌봄 때문에 쓰는 돈은 이들에겐 과거엔 없었던 세금이다. 과다한 청년 주거비, 취업 준비비, 중고교생 사교육비도 마찬가지다. 이제 공급자 위주의 떠넘기기식, 보여주기식의 인색한 정책 틀에서 벗어나 수요자의 입장에서, 공동체의 파트너십을 체감할 수 있는 빈틈없는 정책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했으면 한다. 예산이 없으니 몇 년 더 기다리라는 식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지금 못 태어나고 사라진 국민들은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튼실한 청사진과 함께 충분한 규모의 추경안을 내놓는다면 누가 이를 무시하겠는가.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초저출산#인구 감소#인구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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